메리츠화재, 공격적으로 영업하자 삼성화재 '견제'
보험업황 나빠지자 제한된 시장서 고객 뺏기 경쟁

저성장·저금리·저출산 등으로 보험 산업의 성장동력이 약해지면서 보험사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거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일도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000810)는 최근 메리츠화재가 '손해보험 공정경쟁질서 유지에 관한 상호협정'에 위반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하며 손해보험협회 산하
공정경쟁질서확립 대책위원회(대책위)에 신고했다. 대책위는 손해보험사업의 건전한 발전과 공정경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자율협의기구다.

대책위에 '허위사실 유포'로 보험사간 갈등 중재를 요청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통상은 특별이익 제공이나 설계사 부당 지원으로 갈등 중재가 들어왔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대책위에 올라 징계가 결정되면 최저 30만원, 최대 1000만원의 제재금을 내야한다"고 했다.

사건은 메리츠화재의 한 직원이 독립법인대리점(GA)대표에게 "삼성화재가 의도적으로 전속 설계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인상해 GA들의 설계사 채용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GA 대표들에게 발송하면서 "삼성화재가 GA업계를 무시했다"고 표현한 것이 발단이 됐다. 삼성화재는 GA업계를 무시한다는 부분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메리츠와 삼성화재 간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험담 문제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러가지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이사 부회장.

◇갈등 이유① 메리츠화재의 설계사 데려가기

우선 메리츠화재가 최근 설계사 모집에 열을 올린 것이 갈등의 씨앗이 됐다. 판매 채널이 약해 독립법인대리점 등에 의존해 사세를 키워왔던 메리츠화재는 최근 자사 전속 설계사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 6월 말 메리츠화재의 전속 설계사 수는 1만9471명으로 작년 상반기 말(1만4309명)보다 5162명(36.1%) 증가했다. 메리츠화재와 갈등을 빚은 삼성화재의 설계사 수는 작년 상반기말 1만9343명에서 올해 6월 말 1만8636명으로 707명(3.7%) 줄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 설계사의 수나 역량은 보험영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예민한 부분이 있다"며 "올해 초부터 메리츠화재가 설계사를 너무 데려간다는 불만이 있었는데, 이번에 불만이 터진 것 같다"고 했다.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설계사 확충은 모든 보험사의 당면 과제고, 더 좋은 영업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보상 체계를 정비하는 데 힘쓴 것이 최근 빛을 발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갈등이유② 장기인보험 시장을 둘러싼 경쟁

메리츠화재와 삼성화재는 장기인(人)보험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장기인보험은 만기가 보통 5년 이상으로 길고 질병이나 상해, 재해 등을 보장하는 보장성 보험이다. 삼성화재는 이 분야 1위인데, 최근 메리츠화재가 맹추격해왔다.

삼성화재는 처음엔 "장기인보험은 여러 보험 분야 중 하나"라며 다소 느긋한 모습이었지만, 작년말부터는 시장점유율 유지에 힘쓰고 있다. 전속 설계사에 집중하던 삼성화재가 독립법인대리점(GA) 시책비(판매 인센티브)를 유동적으로 올려잡거나 장기인보험의 보험료를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화재는 이달부터 장기인보험의 보험료를 평균 15% 인하했다. 삼성화재가 장기인보험의 보험료를 두자릿수로 인하한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장기인보험 시장을 양보할 수 없는 건 2022년부터 도입될 새 회계기준(IFRS17)과도 관계가 깊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장기인보험은 충당금 부담이 적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에 유리하기 때문에 지금 신계약을 많이 쌓아놓아야 한다"며 "이 때문에 삼성화재가 장기인보험 시장점유율 유지에 신경을 더 쓰는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GA'가 껴있어서 삼성화재가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해석도 있다. 최근 GA는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의 상품 판매 불매 선언을 하는 등 보험사 판매 정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목소리가 커졌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GA의 역할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메리츠화재가 GA의 동반자라고 표방하고, 실제로는 GA들을 전속 설계사로 데려가는 등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이런 문자까지 나왔다"고 했다.

그래픽=박길우

◇갈등이유 ③ 보험업계 성장 정체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보험시장의 성장성이 둔해진 데 따른 것이다. 보험산업이 확장하고 있다면 서로 뺏고 뺏기는 상황을 용인할 수 있지만, 지금은 한정된 시장을 서로 나눠 가지는 상황이 되다보니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메리츠화재가 홀로 실적 개선세를 보인 것도 갈등이 확대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메리츠화재는 전략적으로 팔면 팔수록 손해인 자동차보험 판매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기업경영으로만 보면 이해가 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 보면 사실 얄밉기도 하다"고 했다.

올 상반기 메리츠화재의 당기순이익은 1361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1% 상승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2.9% 증가한 1880억원, 매출액은 11.9% 증가한 3조8592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삼성화재의 상반기 순이익은 4261억원으로 36.0% 감소했다. DB손해보험과 KB손해보험의 상반기 순이익도 31.3%, 11.6% 줄었다. 현대해상의 경우도 36.1% 감소했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설계사 이동이나 보험상품 판매를 둘러쌀 갈등, 경쟁가열 등의 문제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그 땐 보험시장 자체가 커지는 상황이다보니 갈등이 격렬하게 표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