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3일 조강 생산 누적 10억t을 달성했다. 1973년 첫 쇳물을 생산한 지 46년 만에 달성한 대기록이다.
포스코는 이날 새벽 2시쯤 누적 10억t 생산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포스코 관계자는 "첫 생산부터 누적 1억t을 달성하는 데 16년이 걸렸지만 1억t에서 5억t을 생산할 때까지는 16년이 걸렸고, 이후 누적 10억t 생산에는 14년이 걸려 생산량과 생산 속도가 가파르게 증가했다"면서 "포스코가 그동안 쏟아낸 쇳물이 조선·자동차·건축·교량 등에 쓰여 우리나라 경제가 이만큼 올라서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현재 철강 산업과 철강 수요 산업의 총생산을 합하면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에 달한다.
◇조강 10억t은 車 10억대 만드는 양
조강 생산량 10억t을 환산하면 두께 2.5㎜, 폭 1219㎜인 철판(열연코일)을 쭉 늘어놓았을 때 지구에서 달을 54번 왕복할 수 있는 양이다.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는 38만㎞다. 또한 중형 승용차 10억대(1대당 1t 기준)를 만들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롯데월드타워(높이 555m)를 약 2만 채(1채당 5만t 기준) 건설할 수 있는 규모다.
포스코는 현재 단일 제철소 기준 생산량으로 세계 1·2위인 광양·포항제철소를 보유해 매머드급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첫 쇳물을 뽑아낼 때까지 겪은 과정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1958년부터 1967년까지 다섯 차례나 제철소 건설 계획이 무산됐고 1968년 4월에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설립됐다. 회사는 만들었지만 고로(高爐·용광로)를 지을 돈이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합판·스웨터·가발을 수출해 근근이 먹고살던 때였다. 세계은행과 미국 등이 '한국은 시기상조'라며 자금 지원 의사를 철회해 10개월 만에 제철소 건립이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 국교 정상화 결단을 내려 일본에서 받은 대일(對日) 청구권 자금을 종잣돈으로 용광로를 지을 수 있었다.
박태준 회장을 포함한 포스코 창립 멤버들은 '우향우 정신(건설에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동해에 빠지자는 의미)'을 내걸고 '포항 1고로' 건설에 나섰다. 1973년 6월 9일 이 고로에서 첫 쇳물이 쏟아졌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을 국내에서 생산한 순간이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여기서 생산되는 쇳물로 현대중공업은 조선업을 시작했고 현대자동차는 국산차 포니를 만들었다"며 "건설업과 기계공업도 모두 이 쇳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고로 9개 보유, 세계 5위 철강업체
포스코가 첫 쇳물을 생산한 1973년 조강 생산량은 103만t이었고 국내 조선 건조량은 1만2000CGT(표준화물선환산t수), 국내 자동차 생산은 2만5000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포스코의 조강 생산(해외 포함)은 4286만t, 국내 조선 건조량은 770만CGT, 국내 자동차 생산은 402만9000대로 커졌다. 우리나라는 철강·조선·자동차 산업에서 모두 세계 다섯 손가락에 드는 업체를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일 기준 시가총액 160억800만달러(19조3000억원)로 세계 철강업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조강 생산량으로는 지난해 기준 세계 5위 업체다. 포스코가 보유한 고로는 9개에 달한다.
글로벌 철강 전문 분석 기관인 WSD (World Steel Dynamic)가 포스코를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에 올해까지 10년 연속 1위로 선정했고, 지난 7월에는 국내 기업 최초로 세계경제포럼(WEF)이 뽑는 '등대 공장(Lighthouse Factory·제조업의 미래를 이끌 공장)'에도 선정됐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포스코가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산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교적 건실하게 한국 경제에 기여해왔다"면서도 "다만 국제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데다 철을 수요로 하는 산업 분야도 위축되고 있기 때문에 포스코에는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