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부동산 개발기업인 뉴월드(新世界) 그룹이 최근 300만 제곱피트(약 27만9000m²)의 토지를 홍콩 정부와 사회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뉴월드측은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건설해 홍콩 시민 1만 명의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기부한 토지 가치는 34억 위안(5700여억 원)에 달한다.

홍콩 주거환경은 세계 주요 도시 중 최악으로 꼽힌다. 대졸 초임은 월 230만~360만원 수준인데 방 두 칸짜리 아파트 월세가 평균 440만원에 이른다. 대졸 신입사원 월급으로는 월세를 내기도 부족하다. 집값은 평균 10억원이 넘는다. 홍콩의 평균적인 직장인이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돈 한 푼 쓰지 않고 21년 동안 월급을 모아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04년부터 2018년까지 명목 임금은 63% 올랐는데 40m² 이하 소형 아파트 가격은 420%, 월세는 177% 뛰었다. 그래서 소형 아파트를 더 분할해 '새장' 또는 '관(棺)'으로 불리는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수십만명에 이른다. 뉴욕타임스는 홍콩의 1인당 평균 주거공간이 뉴욕의 평균 주차공간과 비슷한 크기라고 했다. 홍콩 국민소득이 4만8000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홍콩의 지니계수는 1981년 0.451에서 2016년 0.539로 높아졌다.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편이다. 특히 주택 불평등이 심각하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으로 촉발된 반(反)중국 시위가 장기화하고 있는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송환법 철회 이후에도 삶의 질에 대한 불만으로 시위가 더 가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뉴월드 그룹의 토지 기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미담(美談)'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선의에서 나온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압력과 압박의 결과다. 중국 관영 언론들이 다른 언론 매체보다 더 적극적으로 주택난과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방증(傍證)이다.

중국 인민일보는 "홍콩 토지 개발업자들이 땅을 사재기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지금은 자신들만의 이득을 계산 때가 아니라 최대의 선의를 베풀 때"라는 사설을 내보내기도 했다. 홍콩의 친중파들은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를 개발하면 100만채 이상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며 토지를 강제수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결국 중국 정부가 홍콩 부동산 개발회사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정황이 뚜렷하다. 홍콩 시민들에게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는 대신 재벌 대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체제에 대한 불만을 희석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익히 보던 수법을 닮았다.

공산주의·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이런 난폭한 방식이 통할지는 잎으로 두고볼 일이다. 부동산 시장이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위험도 있다. 토지 기부 강요같은 반(反)시장 조치가 홍콩 경제의 경쟁력과 신뢰도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자본 유출과 기업 탈출의 후폭풍이 밀려올 수 있다.

한국의 주택문제는 홍콩이 비하면 훨씬 양반이다. 집값 폭등에 대한 불만과 우려가 끊이지 않지만 국제 비교로는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다. 1980년 이후 실질주택가격 상승률을 보면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독일과 일본에 이어 가장 낮다는 분석 자료도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주택가격 수준도 선진국 중에서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별로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전국 집값이 아니라 서울 집값 상승률은 거의 상위권에 가깝다는 다른 자료도 있다. 국토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최근 4년 내 처음 내 집을 마련한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43.3세다. 2012년 44.4세로 정점을 찍은 뒤 2016년 41.9세로 낮아졌다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평균적으로 마흔 살이 넘어서 내 집을 처음 갖게 된다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우울한 기록이다. 젊은 세대가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집값 거품이 꺼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작년 9·13 부동산 대책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서울 집값과 전셋값이 최근 13주 연속 올랐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주요 원인이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도 우격다짐으로 주택 가격을 억누르는 정책을 펴다 역풍을 맞았다. 최근에는 분양가상한제 확대, 전·월세 계약 갱신청구권 등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가격규제 정책이 주택 공급 축소와 가격 상승의 불안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주택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요와 공급이다. 시장 원리의 적용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가격 통제의 폭력적인 방식으로는 주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집값 불안이 국지적 현상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은 전국적 현상이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26%, 부정적인 평가는 48%로 나타났다. 부동산 카페 등에는 집값 폭등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는 글이 수없이 많다. 홍콩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의 부동산 민심도 들끓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위험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