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178년째인 세계 최고(最古) 여행사 토머스 쿡(Thomas Cook)이 지난 23일 파산을 선언하자 많은 글로벌 기업이 충격에 빠졌다. 토머스 쿡은 한때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행업을 선도해온 기업이었다. 1841년 세계 최초로 단체 기차 여행을 기획했고, 4년 뒤 처음으로 사업화했다. 이후에도 패키지여행, 여행자 수표 발급, 외화 환전 서비스, 여행책자 발간 등 지금은 당연해 보이는 여러 여행 관련 서비스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다.

꿈같은 여행이 악몽으로 - 지난 23일(현지 시각) 스페인 팔마데마요르카 공항에서 영국 여행사 토머스 쿡 고객들이 바닥에 앉아 항공편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 최고(最古) 여행사였던 토머스 쿡이 이날 파산을 선언하면서, 고객 수만 명이 여행지에서 발이 묶였다.

부킹닷컴, 트립닷컴 등 온라인 플랫폼의 등장으로 여행 산업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전통 '패키지여행' 회사인 토머스 쿡이 수세에 몰리긴 했지만, 연간 100억파운드(약 14조8000억원) 매출을 내는 거대 여행 그룹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일각에서는 패키지여행 인기가 시들해진 탓이라고 분석하지만, 지난 5년간 영국에서 패키지여행을 한 여행객은 매년 2만명 안팎으로 크게 줄지 않았다.

이 때문에 토머스 쿡의 몰락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새로운 혁신은 내놓지 못하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데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까지 겹쳤다는 것이다.

'혁신' 사라진 '혁신 아이콘'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토머스 쿡의 붕괴를 두고 "혁신 기업이 자기 혁신을 이어가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익스피디아 등 최저가 항공권을 살 수 있는 다양한 인터넷 여행 플랫폼이 등장했지만, 이미 22년 전 영국 최초로 인터넷으로 최저가 항공권·호텔을 찾고 예약하는 서비스를 제공한 회사가 토머스 쿡이다. 여행자 수표를 세계 최초로 발급해 여행객의 편의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토머스 쿡은 이런 강점을 이어가지 못했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토머스 쿡 비즈니스 모델의 문제는 사업 대부분이 '오프라인 여행사 점포'에서 벌어진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토머스 쿡은 최근까지 560개 오프라인 점포를 유지하며 2만1000여 명을 고용했다. 오프라인 기반을 유지하는 데에만 집중한 탓에, 온라인 쪽에는 사업 역량을 충분히 쏟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시장조사업체 '아바'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인 60%가 해외에서 휴가를 보냈는데, 7명 중 한 명만 오프라인 점포에서 여행상품을 구매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오프라인 고객은 보통 65세 이상이고, 여행에 큰 예산을 쓰기 어려워 수익성도 떨어지는 편"이라고 전했다.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전 세계 여행객 숫자는 1990년 4억3500만명에서 2017년 13억2300만명으로 세 배 늘었다. 토머스 쿡은 이 거대 시장을 인터넷 여행 사업자에 뺏긴 것이다.

국내 여행사인 참좋은여행 관계자는 "과거 여행 책자 사업을 바탕으로 여행 미디어·콘텐츠를 개발하거나, 여행자 수표를 개발했던 것처럼 여행 관련 결제 편의를 높이는 핀테크 사업 등으로 진출했다면 토머스 쿡이 지금처럼 허망하게 주저앉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빚더미

100억 넘게 챙긴 경영진 - 파산한 토머스 쿡 경영진은 수백억원대 보수를 받아 도덕적 해이 논란을 빚고 있다. 폰텔라 노보아 전 사장(왼쪽)은 2011년 물러나기 직전 보너스로 약 250억원을, 최근 파산을 선언한 피터 판크하우저 사장은 2014년 취임 이후 급여와 보너스로 125억원을 챙겼다.

토머스 쿡은 파산 직전 부채가 17억파운드(약 2조5100억원)에 달했다. 중국 푸싱그룹 등 채권단이 구제금융 지원을 약속했지만 2억파운드(약 3000억원) 채권을 막지 못해 파산을 선언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브렉시트 등 대외 이슈가 없었더라도 이미 토머스 쿡의 빚은 너무 많았다"며 "지나치게 많은 투자를 한꺼번에 실행했던 게 독(毒)이 됐다"고 분석했다.

2000년 전후 토머스 쿡은 대대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1999년 글로벌 여행그룹인 칼슨 레저 그룹의 영국 사업부와 합병했고, 2001년엔 독일의 항공·여행사인 콘도르앤네커만과 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특히 2007년 여행사 마이트래블그룹을 인수한 것은 치명타였다. 영업이익이 늘기는커녕 인수 대금 이자만 지난 8년간 12억파운드(약 1조7700억원)를 냈다. 마이트래블은 덩치만 컸지 2001~ 2007년 사이 한 해만 이익을 냈던 회사였다. 토머스 쿡은 시장 점유율 높이기에만 매달려 경쟁사를 인수했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만 보는 인수·합병을 하는, '승자의 저주'에 걸렸던 것이다.

토머스 쿡은 2003년 항공사 브랜드를 새로 론칭하기도 했다. 118대 항공기를 운영했는데 그중 84대가 임차였다. 손님이 많으면 이익이 배가 되지만, 반대의 경우 손해도 커지는 구조다. 또 전 세계 200곳에 호텔도 운영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저비용 항공사(LCC)와 에어비앤비 등 값싼 대체품이 생겨났고, 토머스 쿡이 시도한 관광업의 수직 계열화는 실패로 돌아갔다. 작년 한 해 3600억원 가까운 임차료를 지출했고, 영업손실은 2400억원에 달했다. 가디언은 "토머스 쿡이 '빚더미'에 눌려 사라졌다"고 했다.

경영진 '도덕적 해이' 지적

토머스 쿡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빚만 남긴 마이트래블 그룹 인수를 결정했던 폰텔라 노보아 전 사장(CEO)은 2011년 물러나기 직전 1700만파운드(약 250억원)의 보너스를 받았다. 최근 파산을 선언한 피터 판크하우저 사장은 2014년 취임 이후 급여와 보너스로 약 840만파운드(약 125억원)를 챙겼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주요 임원이 받아간 돈은 2000만파운드(약 300억원)에 달했다.

급기야 영국 정부는 토머스 쿡 파산 과정에서 경영진의 잘못이 있는지를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기업이 실패하는 순간에도 이사들이나 이사회가 거액의 돈을 스스로 지급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BBC는 "영국 의회를 중심으로 경영진에게 지급된 보수를 몰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