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칩셋 순위 화웨이 작년 12위➝올해 7위...삼성전자 9위➝13위 하락과 대비

"알리바바의 상품 사진 데이터베이스에 매일 새로 올라오는 10억장의 사진을 인식하는데 종전의 영상칩(GPU)으로는 1시간이 걸렸지만 한광800 사용 덕에 5분으로 줄었다."(장젠펑 알리바바 최고기술담당임원, 9월 25일)

"천문학자들이 20만개 이상 별로 가득 찬 남반구 별자리 지도에서 특정한 천체를 찾는 데 169일이 걸리지만 아틀라스 900은 10초 만에 스캔했다"(후허우쿤 화웨이 순환 회장, 9월 18일)

중국이 인공지능(AI)칩 시장에서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전통적인 반도체 영역에서 뒤진 격차를 신흥 시장인 AI칩에서 줄이려는 전략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콤파스 인텔리전스가 매기는 AI칩셋 글로벌 순위에서 화웨이는 작년 12위에서 올해 7위로 5단계 상승했다. 9위에서 13위로 밀린 삼성전자를 추월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컨설팅업체 텐X2를 인용해 중국은 전통적인 반도체에서 미국에 크게 뒤져 있지만 AI칩에서는 2~3년 차이 밖에 없다고 전했다.

중국에서 AI칩은 하드웨어 업체와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영역 경계가 무너지는 또 하나의 무대가 되고 있다. AI칩 시장에 엔비디아 퀄컴 뿐 아니라 구글 아마존 같은 인터넷 기업들도 뛰어드는 글로벌 트렌드와 다르지 않다. 생산은 위탁을 하고 설계에 역점을 두고 있다.

AI칩은 GPU(그래픽처리장치) FPGA(프로그래머블 반도체) ASIC(주문형 반도체) NPU(신경망 처리장치) 등에 걸쳐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17년 46억달러(약 5조 5200억원)에 달한 전세계 AI 칩 시장이 2020년 148억달러(약 17조 76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ABI리서치는 클라우드용 AI칩 글로벌 시장이 2024년 100억달러(약 12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간판 IT기업들 AI칩 개발 경쟁

후허우쿤 화웨이 순환 회장이 AI 트레이닝클러스터 아틀라스 900을 소개하고 있다.

중국의 AI칩 시장 선두에는 중국 최대 스마트폰업체이자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가 있다. 중국 최대 인터넷검색업체 바이두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도 AI칩 개발 경쟁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용과 클라우드 서버용 AI칩 개발에 모두 나서고 있다. 지난 26일 중국에서 판매를 시작한 화웨이의 신작 플래그십 스마트폰 메이트30은 두뇌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로 자체 설계된 기린 990이 탑재됐다. 화웨이는 2017년 스마트폰용 AI 칩셋 ‘기린 970’을 처음 상용화한 후 계속 업그레이드해왔다. 기린 990은 지난 6일 발표된 최신 칩이다.다음 버전인 기린 1000이 내년 상반기 상용화를 앞두고 테스트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는 클라우드가 확산되면서 수요가 늘고 있는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AI칩 어센드 910의 상용화를 지난 8월 23일 발표했다. 어센드 910을 수천 개 연계한 AI 트레이닝클러스터 아틀라스 900은 지난 18일 공개됐다.

아틀라스 900은 AI 트레이닝 성능을 측정하는 기준인 레스넷-50(ResNet-50)을 트레이닝 하는데 59.8초 걸렸다. 기존 세계 기록을 10초 단축했다. 후허쿤 화웨이 순환회장은 '10초'에 대해 "스프린터가 달리기 결승선을 통과한 뒤 2등이 도착하기 전 물 한 병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라고 비유했다.

아틀라스 900은 천문학부터 기상 예보, 자율주행, 유전 탐사 등 과학 연구와 비즈니스 혁신을 지원할 예정이다. 화웨이는 자사의 클라우드를 통해 기업들이 아틀라스 900을 이용하도록 했다.중국공정원의 일원인 가오원은 기조연설에서 '엑사스케일 컴퓨팅(1초당 100경회 연산이 가능한 엑사플롭스급 컴퓨팅)'을 지원하는 중국의 첫 AI 슈퍼컴퓨팅 시스템 구축에 대한 화웨이와의 협력 계획을 소개했다.

화웨이의 AI칩 개발 능력은 국제 컨설팅업체의 평가를 받고 있다. 콤파스인텔리전스가 지난 6월 발표한 AI칩셋 글로벌 순위에서 화웨이는 7위로 평가지수가 90을 기록했다. 작년에 이어 1위를 고수한 엔비디아보다 4.4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작년 엔비디아와의 격차 20.8포인트에서 크게 줄어든 것이다.

아틀라스 900의 핵심칩인 어센드 910이 처음 공개된 건 화웨이의 AI전략이 발표된 작년 10월로 이후 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잇따랐지만 화웨이의 AI 기술 추격 행보를 저지하지 못했다.

지난 8월 쉬즈쥔 화웨이 부회장은 어센트 910 상용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Ai의 연구개발에서부터 출시까지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타임스가 화웨이와 알리바바의 자체 AI칩 개발을 두고 중국이 미⋅중 무역전쟁 속에 자체 기술을 개발하려고 노력하는 동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한 것과 맥이 닿는다. 어센트 910 발표 당시 CNBC는엔비디아 퀄컴 인텔 삼성전자등과 대적하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장젠펑 알리바바 CTO가 클라우드용 AI칩 한광 800을 발표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설립한 반도체 설게 자회사 핑터우거를 통해 지난 25일 클라우드 컴퓨팅에 사용하는 AI칩 한광 800을 발표했다. 장젠펑 알리바바 최고기술담당임원(CTO)은 "한광800은 항저우의 도시 관리 업무에 적용돼 테스트 단계에서 10개의 GPU에 상당하는 업무를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알리바바의 첫 스마트도시 구축 대상인 항저우의 교통 CCTV 영상처리를 위해 40개의 GPU가 필요했지만 한광800 4개로 이를 대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지연 시간도 300ms(1ms는 1000분의 1초)에서 150ms로 줄었다. 한광 800은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업무에 이미 적용되고 있다. 상품 인식, 자동 번역, 맞춤 추천, 광고, 고객 서비스 등에 활용되고 있다. 앞서 작년 7월엔 바이두가 클라우드용 AI칩 쿤룬을 내놓았다.

리옌훙 바이두 회장이 클라우드용 AI칩 쿤룬을 소개하고 있다.

♢AI칩 유니콘 1호는 중국 반도체 설계기업

반도체 전문 설계업체들도 AI칩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비트메인이 지난 17일 발표한 스마트도시 전용 AI칩 BMI1684이 대표적이다. 푸저우시의 스마트도시 프로젝트에 적용될 예정이다. 2013년 베이징의 실리콘밸리 중관춘에 설립된 비트메인은 중국 2위의 팹리스 반도체 설계업체다.

상하이에서 지난 8월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에 선보인 한우지의 차세대 클라우드용 AI칩 스위앤 270을 관람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중국에서 AI칩 설계 최고 전문업체는 한우지다. 창업 2년째인 2017년 알리바바와 레노버의 계열 창투사 등으로부터 1억달러(약 1200억원)를 투자받아 세계 AI 반도체 분야 1호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에 올랐다. 한우지는 콤파스 인텔리전스의 AI칩셋 글로벌 순위에서 중국 기업으로는 화웨이어 2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화웨이가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용 AI 칩셋이라고 소개하는 ‘기린 970’은 화웨이 계열 반도체 설계회사 하이실리콘이 개발했고, 기린 970에 들어간 핵심처리장치인 NPU는 한우지가 제공했다. 딥러닝을 할 수 있는 NPU다. 삼성전자 중국 관계자는 "화웨이의 반도체 경쟁력 뒤에는 한우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우지는 단말기와 클라우드용 칩 개발 기술을 보유한 첫번째 중국 기업이라는 칭호가 따라 붙는다.

한우지는 지난 8월 29~31일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 AI 대회에서 차세대 클라우드용 AI칩 스위앤 270을 공개했다. 한우지는 이 대회에서 AI칩을 스마트제조, 스마트교통 5G(5세대)이동통신 등에 응용하는 솔루션을 함께 선보였다. 지난 22일엔 5G 상용화를 앞둔 차이나텔레콤과 AI 분야에서 전면적으로 협력하기로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중국의 AI칩 굴기 노력 뒤에는 정부가 있다. 공업정보화부는 2017년 12월 발표한 차세대 AI산업 발전 3년 액션플랜(2018~2020년)을 통해 2020년까지 NPU를 양산하고, 일정규모 이상으로 응용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중국에는 반도체 설계를 비롯해 관련 기업이 2000여개에 이른다. 업체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 하지만 전세계 반도체 매출 점유 비중은 13%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설계 자급률은 15%에 머물렀다고 닛케이아시아리뷰가 전했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15% 불과한 반도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자급률을 2025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아래 민⋅관이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