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영업해서 번 돈으로 이자비용도 갚지 못하는 '좀비 기업'이 눈에 띄게 늘었다. 경기 부진과 집값 하락 직격탄을 맞은 지방 채무자들의 연체율도 고개를 들고 있다. 각종 국내 경제 지표가 악화되는 가운데, 미·중 무역 분쟁 등 대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우리나라 '금융안정지수'가 3년 반 만에 '주의' 단계에 진입했다. 금융 부문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26일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서 지난달 '금융안정지수'가 8.3을 기록, '주의 단계'(8~22)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금융안정지수는 한은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금융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만든 지표로, 연체율과 소비자·기업 심리지수, 실업률 같은 실물 지표부터 원·달러 환율 변동성, CDS(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 같은 금융시장 지표 등 20가지 데이터를 종합해 만든 것이다. 22를 넘으면 '위기 단계'로 본다. IMF 외환 위기 때는 최고치인 100까지 올랐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50대를 웃돌았다가 최근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왔는데, 3년 6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한은은 "위험 증대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의 복원력은 여전히 양호한 상태"라며 "다만 예상치 못한 충격 발생에 대비해 기업 신용 위험과 가계부채 부실 관리를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좀비 기업' 100개 중 14개
한국은행은 최근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현상을 특히 주목했다. 한계기업이란 벌어서 이자비용도 감당 못한 지 3년 이상인 기업을 말한다.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 1 미만이면 일단 위험 신호가 켜지고, 이런 상태가 3년 연속 계속되면 사실상 좀비 상태로 본다. 우리나라 전체 외부감사 대상 기업(2만2869개) 가운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좀비 기업은 14.2%나 됐다. 1년 전(13.7%)보다 0.5%포인트 늘었다. 대기업 중에는 10.6%, 중소기업 중에는 14.9%가 이런 상태였다. 업종별로는 숙박음식(35.8%), 조선(24.0%), 부동산(22.9%), 운수(18.7%), 해운(16.8%) 등에서 좀비 기업 비중이 평균보다 높았다. 특히 숙박음식 업종은 3곳 중 1곳 이상이 한계 상황에 몰려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 큰 문제는 최근 한계기업군에 새로 진입하거나 잔류하는 기업은 늘어나는 반면, 탈출에 성공하는 기업은 줄고 있다는 점이다.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상태가 2년 연속 지속된 기업 비중이 지난해 20.4%로 전년보다 1.4%포인트 늘었고, 이들 중 실제 한계기업으로 추락한 비율도 63.1%로 전년보다 10%포인트 가까이 급증했다.
◇지방 가계부채, 부실 위험성 높아져
지방의 가계부채 건전성이 2017년 이후 급격히 악화되는 것도 큰 걱정거리다. 수도권보다 지방의 가계 빚 증가 속도가 더 가파른데, 지방의 집값 하락세가 빨라 대출이 부실화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게 한은 분석 결과다.
비(非)수도권 가계대출 중 연체대출 비중은 2017년 말 2.5%에서 올해 2분기 말 3.1%로 상승했다. 특히 취약 차주(다중채무자이면서 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 차주)의 연체대출 비중이 2016년 말 20.5%에서 2분기 말 27.7%로 두드러졌다. 경매에 나온 주택 건수도 지방이 수도권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방 가계부채가 우려스러운 것은 대출자들의 소득과 신용도가 수도권보다 대체로 낮고, 은행이 아닌 상호금융 등 제2 금융권에서 빌린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한은은 "지방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시스템 전체 위험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지방 가계부채의 구조와 대출자들의 상환 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지방 대출 비중이 높은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 관계자는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경기가 회복돼야 기업·가계의 위험이 낮아지기 때문에 정부가 경기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