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기에 백신을 담는 모습. 글로벌 제약사들은 바이오 기업과 손잡고 암이나 에이즈 등을 치료하는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기술력을 앞세워 프리미엄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은 지난 7월 스위스 생명공학 기업 아말테라퓨틱스를 인수했다.

계약금을 포함해 최대 3억2500만유로(약 4307억원) 규모의 인수·합병 계약이다. 아말테라퓨틱스는 'ATP128'이라는 대장암 4기 치료용 암 백신을 개발하는 회사다.

미헬 페레 베링거인겔하임 경영이사회 혁신사업 담당 이사는 "이번 인수는 혁신적인 항암제 개발을 위한 베링거인겔하임의 장기 전략"이라고 밝혔다.

독감 주사처럼 질병 예방용으로만 여겨졌던 백신이 치료제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암이나 에이즈 등 치료가 어려운 질병에도 백신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바이오 기업과 손잡고 새로운 백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정찬웅 팀장은 "치료에서 예방으로의 보건정책 전환과 감염성 질환 증가 등의 요인으로 백신 시장 고성장이 예상된다"며 "진입 장벽으로 인해 일부 기업체만 접근 가능했던 백신 시장에 국내 제약 기업들이 기술력을 앞세워 다양한 종류의 백신 개발·생산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해 6조원 벌어들이는 '블록버스터'

전 세계 백신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2017년 335억7000만달러(약 39조5600억원)였던 백신 시장은 2028년 1035억7000만달러(약 124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11%로 급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백신 시장은 머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화이자, 사노피파스퇴르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의 주력 제품들은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되고 있다. 화이자의 폐렴구균 백신 '프리베나13'은 지난해 약 58억달러(약 6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노피의 독감 백신 '플루존', 디프테리아·백일해·소아마비 등을 예방하는 백신인 GSK의 '페디아릭스' 등 다수의 백신은 연매출 10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암 등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용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 예방 백신은 건강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약하게 만든 바이러스·병원균 등을 몸 안에 주입해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백신을 말한다. 치료 백신은 질병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백신이다. 2010년 전립선 암 치료 백신인 '프로벤지'가 미국 FDA에서 승인된 이후로 에이즈, 자궁경부암, 흑색종 등 치료 백신이 개발 중이다. '맞춤형 암 백신'은 2019년 MIT 10대 혁신 기술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미 머크의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은 연매출 약 30억달러(약 3조5000억원)를 달성했다. 머크는 미국의 바이오 기업 모더나테라퓨틱스와 유전 물질인 mRNA를 이용한 암 백신 'mRNA-5671'도 개발하고 있다. 모더나테라퓨틱스의 또 다른 항암 백신 'mRNA-4157'은 임상 2상에 돌입했다. mRNA는 DNA에 담긴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일종의 매개체이지만, mRNA를 면역계에 전달하면 인체 내부에서 자체 항체를 생성한다. 또 종양에서 많이 발견되는 특정 세포에 mRNA를 전달해 원하는 단백질을 인위적으로 발현하는 방식으로 암을 공격할 수 있다. 바이오 기업 제넨텍과 바이오앤테크는 환자 본인의 면역 체계를 이용해 종양 세포를 공격하도록 하는 항암 백신을 개발 중이다. 미국의 일라이릴리도 독일의 생명공학 회사인 큐어백과 mRNA를 이용한 항암 백신 개발에 나섰다.

국내 제약사들 프리미엄 백신 공략

국내 백신 시장도 성장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백신 시장 규모는 2012년 4087억원에서 2016년 5563억원으로 연평균 8%씩 증가했다. 2021년에는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후발 주자인 국내 제약사들은 프리미엄 백신 개발을 공략하고 있다. 이미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백신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백신은 폐렴구균이나 자궁경부암처럼 치료와 예방이 어려운 질병을 막기 위한 백신을 말한다. 일반 백신 가격보다 3배가량 높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프랑스 사노피파스퇴르와 2014년부터 차세대 폐렴구균백신을 공동 개발해 지난해 12월 글로벌 임상 1상에 돌입했다. 또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의 연구 개발 지원하에 국제백신연구소와 장티푸스 백신을 개발하고 있고, 글로벌 기구인 패스(PATH)와 함께 유아 설사를 일으키는 로타바이러스에 대한 백신도 개발하고 있다. 국내에서 자궁경부암 백신의 임상 1/2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세포배양 방식의 백신 생산 기술을 1억5500만달러에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파스퇴르에 기술 수출했다. 이 기술은 다양한 변종 바이러스까지 예방할 수 있는 차세대 독감백신 개발에 적용될 예정이다.

LG화학도 폐렴구균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또 LG화학이 개발 중인 6가 혼합백신은 영·유아에게서 치사율이 높은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B형 간염, 뇌수막염, 소아마비 등 6개 질병을 동시에 예방한다. 현재 6가 혼합백신 임상 2상을 준비하고 있다. 해외 임상시험과 백신 생산설비 확장을 통해 2023년 이후 유니세프 등 전 세계에 백신을 공급할 계획이다.

GC녹십자는 차세대 대상포진 백신 'CRV-101'의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미국 워싱턴주(州) 시애틀에 현지 법인 '큐레보'(Curevo)를 설립했다. 프리미엄 백신 시장이 가장 큰 미국 시장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직접 진출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