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근당 효종연구소 연구원들이 신규 원료 합성 중 분리 정제 실험을 하고 있다.

종근당은 지난 8월 창업주 고촌 이종근 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신약 개발 심포지엄을 가졌다. 국내외 전문가 250여명이 참석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종근당의 주력 신약 플랫폼인 '히스톤디아세틸라제6(HDAC6)' 억제제가 주목을 받았다. 종근당은 인체 여러 조직에서 HDAC6를 억제하는 약물들을 개발해 다양한 질병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뇌에 있는 이 효소를 억제해 헌팅턴병을 치료하고, 말초신경에서 같은 효소를 공략해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플랫폼 기술은 다양한 신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 기술로, 기존 의약품에 적용해 약효 지속 시간이나 약물 전달 방법을 다르게 하거나, 여러 인체 조직에 있는 하나의 생체 물질을 공략해 여러 가지 질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최근 여러 업체가 한 가지 신약 후보에 매달리다가 막바지 단계에서 잇따라 좌절하면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신약 후보를 다양화함으로써 신약 개발 능력을 높이고 위험 부담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애브비는 항암제 개발 플랫폼 기술을 가진 업체를 인수했으며, 스위스 노바티스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업체를 인수했다.

관절염 치료제 대체할 혁신 신약 개발 중

HDAC6는 인체 효소로 암세포의 사멸과 종양의 혈관형성, 전이, 면역 세포의 분화와 억제, 근육 분화와 심근형성 등 다양한 생물학적 작용에 관여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많이 생겨 세포에서 물질이 수송되는 통로인 마이크로튜블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이로 인해 알츠하이머성 치매, 헌팅턴병, 샤르코-마리-투스병(CMT) 등 다양한 신경 질환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HDAC6가 증가하면 활성산소를 더 많이 생성시켜 면역 세포를 억제하고 다양한 염증 반응을 유발한다고도 알려졌다. 종근당은 HDAC6를 억제하는 플랫폼 기술을 개발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CKD-506, 헌팅턴병 치료제 CKD-504,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 CKD-510 등 다양한 신약 후보군을 확보했다.

고촌 이종근 회장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신약 심포지엄 모습.

현재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른 혁신 신약 후보는 CKD-506이다. 이 약물은 HDAC6를 억제해 염증을 감소시키고,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T세포의 기능을 강화하는 치료제다. 전임상과 임상 1상 시험을 통해 약효와 안전성을 입증했다. 현재 유럽 5개국에서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a상을 진행하고 있다. 종근당은 CKD-506을 기존 관절염 치료제를 대체할 수 있는 혁신 신약으로 개발하고, 마땅한 약이 없는 다른 자가면역질환으로도 치료 범위를 넓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종근당은 지난 3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4회 유럽 크론병 및 대장염 학회'에서 CKD-506의 염증성 장 질환 치료 효과를 확인한 전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운동·인지 능력 동시 회복

헌팅턴병 치료제 CKD-504는 미국에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헌팅턴병은 인구 10만명당 3~10명에게 발병하는 희소 질환으로,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겨 근육 조정 능력이 상실되고 인지 능력 저하와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까지 발생시킨다. 현재 이상 운동 증상에 대한 개선제만 나와 있다. CKD-504가 개발에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로 환자의 인지 기능과 운동 능력을 동시에 개선시키는 헌팅턴병 치료제로서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인 CKD-510 개발에도 HDAC6를 억제하는 플랫폼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이 병은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운동 신경과 감각 신경이 손상돼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희소 질환으로, 아직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 CKD-510은 현재 전임상을 완료하고 유럽 임상 1상을 준비하고 있다.

김성곤 종근당 효종연구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HDAC6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HDAC6를 억제하는 기전의 치료제가 없다는 점에서 종근당의 신약 파이프라인이 주목받고 있다"며 "환자 수요가 큰 분야나 희소 질환으로 파이프라인을 확대해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