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광역시·도 전수조사...과태료 부과 제주와 전남 2곳뿐
4월 충전방해금지법 시행됐지만 충전소 설치 거부 우려에 엄격단속 주저

"10번 중 7번은 일반 차가 주차되어 있어요. 퇴근 후 전기자동차 충전공간에 주차한 일반 차량 차주에게 전화해 양해를 구하는 게 일과가 됐어요."

일산의 한 아파트에 거주 중인 이모(25)씨는 귀가 때마다 전기차 충전시설이 있는 주차구역에 주차된 일반 차량 차주에게 전화를 건다. 다음날 출근을 위해 충전이 필수기 때문에 ‘일반차량의 소유자에게 연락하여 양해를 구한 후 이용’하라는 아파트 안내문에 따라 ‘불편한’ 전화를 반복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전기차 충전구역에 일반차량이 주차돼 있어도 구속력있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전기차 운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 4월 시행된 충전방해금지법(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상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 중 주차단위 구획을 100개 이상 갖춘 곳은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대상이다.

25일 조선비즈가 17개의 광역시·도를 전수 조사한 결과 제주특별자치도와 전라남도를 제외한 서울 경기도 등 15개 시·도에서 아파트를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전방해금지법에 따르면 과태료 부과 대상 제외 여부는 시·도지사, 특별자치도지사, 특별자치시장,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이 정한다. 또 아파트의 전기차 충전구역은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일산의 한 아파트 주차장 전기차 충전구역에 일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제주도는 아파트내 전기차 충전 구역에 일반 차량이 주차돼 있을 경우 생활불편 앱이나 국민신문고로 신고를 받으면 최저 10만원 이상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전남은 2017년 3월 16일 이후 지어진 아파트에 대해서만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고, 이에 대한 관리·감독은 시·군으로 위임했다.

지자체들은 아파트를 전기차 충전구역 주차 위반 차량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데 대해 아직 전기차 보급이 초기단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태료 부과 대상에 사유지인 아파트를 포함하면 신규 충전시설 설치 자체를 꺼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북도청 관계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하면 아파트 입주자 측에서 추가 설치를 꺼리는 경우가 있다. 전기차 보급을 늘려야하는 도입단계이다보니 강력한 단속은 힘들다"고 말했다. 대구광역시청 관계자 역시 "과태료를 부과할 거면 기존 충전시설을 철거해 가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현재 1148세대 중 전기차를 보유한 세대는 3세대에 불과한데 충전공간은 7곳이다"며 "이 공간을 전기차 충전을 위해 비워두고, 과태료를 부과한다면 입주민 간의 불화가 심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전기차 충전시설을 아직 도입하지 않은 서울시 서대문구 아파트의 관리소 직원 최모(46)씨는 "주차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공간을 할애해 전기차 충전시설을 들이는 것에 주민들이 부담스러워한다"며 "과태료까지 부과하면 설치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고 전했다.

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에 붙은 전기차 충전시설 관련 안내문.

전기차 차량 소유주라도 과태료 부과 해당 지역 가운데 급속 충전시설이 있는 구역에 장시간 주차하는 것은 제재 대상이다. 충전방해금지법에 따르면 급속충전시설을 이용하는 전기차가 충전을 시작한 이후 2시간이 지난 후에도 해당 충전구역 내에 계속 주차하는 행위에 대해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아파트가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되면 전기차 소유주도 급속충전시설에서는 2시간 이상 주차할 수 없게되는 것이다.

지자체들은 과태료 부과 대신 계도 위주로 해결책을 찾고 있다. 민원이 들어오면 해당 차주에게 안내장을 발송하는 식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계도 조치를 부탁하기도 한다. 아파트는 주차금지 팻말을 세워두거나 안내문을 붙이는 등의 조지를 취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