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호 맥킨지 한국사무소 파트너

요즘 싱가포르 학생들은 스마트 워치로 학교 내 매점이나 학교 밖 가맹점에서 음식·책·학용품 등을 손쉽게 구매한다. 학부모들은 앱을 통해 자녀들의 지출 내역과 건강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동남아 최대 금융그룹 중 하나인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이 2016년 세계 최초로 시작한 학생용 웨어러블 저축·결제 시스템인 '스마트 버디(Smart Bud dy)' 프로그램 덕분이다. DBS는 학생들에게 스마트 워치를 무료로 나눠줬다. 현재 44개 학교가 결제 단말기를 설치하며 이 프로그램에 동참했고, 이를 통해 DBS의 금융거래 건수는 25% 이상 증가했다. DBS는 교육이라는 주제 아래 고객(학부모)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미래 고객(학생)까지 잡는다는 계획이다.

DBS는 또 싱가포르 최대 차량 판매 플랫폼인 SG카마트 및 카로와 제휴해 신규 고객을 확보, 자동차 구매 플랫폼인 자동차마켓플레이스를 통해 자동차담보대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부동산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택 구매 앱 홈커넥트,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페이라(PayLah!) 등 다양한 분야에서 50여개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디지털 생태계를 계속 확장 중이다. DBS는 이 같은 디지털 전환 전략에 지난 5년 동안 매년 10억싱가포르달러(약 8610억원)씩 투자해 디지털 고객 비율을 지난 2015년 33%에서 지난해 48%까지 15%포인트 끌어올렸다.

DBS뿐 아니라 아시아 선도 금융 회사들이 수익성 저하와 디지털 플랫폼들의 위협에 맞서 에코시스템에 뛰어들고 있다. 에코시스템이란 하나의 통합된 플랫폼에서 고객에게 상품 및 서비스 등 다양한 경험을 충족시켜주는 일종의 '네트워크 경제'를 말한다. 에코시스템을 통해 신규 고객을 확보하고 기존 고객과의 관계 강화, 데이터를 통한 추가적인 수익 창출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맥킨지는 2025년까지 에코시스템을 통해 창출될 경제적 가치가 60조달러(약 7경17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금융업의 경우 헬스케어, 자동차, 주택, B2B(기업 간 거래) 및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전자상거래, B2C 서비스 등 5개의 핵심 생태계에서 높은 가치 창출이 기대된다.

헬스케어·주택·자동차 생태계를 잡아라

호주 최대 은행인 커먼웰스은행(CBA)은 부동산 생태계 구축에 집중했다. 부동산 포털 회사인 도메인, 부동산 평가사인 APM과 제휴해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집 실물 사진을 찍으면 관련 정보가 화면에 즉시 뜨고 주택 가상 투어, 온라인 모기지 계산, 중개인 연결 등 주택 탐색부터 대출 상담까지 모든 주택 구입 과정을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혁신적인 주택 앱을 개발했다. 이 앱은 현재 호주 주거용 부동산의 95% 이상에 대해 시장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한 초등학생이 스마트 워치를 이용해 남은 용돈 잔액을 확인하고 있다. 이 스마트 워치는 세계 최초로 아동용 전자결제 시스템인 '스마트 버디'를 출시한 싱가포르 은행 DBS가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학부모들도 앱을 통해 자녀의 지출 동향과 건강을 손쉽게 모니터링할 수 있다.

세계 최대 보험사인 중국 핑안은 금융·헬스케어·부동산·자동차 4개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선정, 지난 2011년 이후 대규모 기술 투자에 나섰다. 그 결과 핑안이 새롭게 구축한 생태계 고객 수(5억3800만명)는 기존 보험 고객 수(1억8400만명)의 3배에 이른다. 예컨대 핑안의 원커넥트는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 483개 은행, 42개 보험사, 2500개 비은행 금융회사에 핀테크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 최대 금융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병원 예약, 온라인 진료 등을 제공하는 원스톱 헬스케어 플랫폼인 핑안굿닥터의 경우 핑안헬스와 핑안건강보험을 통해 헬스케어 서비스 패키지를 판매하는 등 시너지를 내고 있다. 핑안이 보유한 4개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기업 가치는 이미 700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핑안그룹의 총 시장 가치는 1800억달러에 이른다.

플랫폼 개발 뛰어든 아시아 은행

인도의 SBI은행은 제3자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수익 모델로 고객층을 확대했다. SBI는 디지털 플랫폼인 요노(YONO)를 개발, 협력 파트너사들의 투자·보험 등 금융상품 30여개를 판매한다. 그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자상거래 업체 85곳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패션·여행상품 등도 판다. 하루 2만7000개 계좌가 개설되는 등 요노의 올 1분기(1~3월) 거래 건수는 전 분기 대비 225% 증가한 250만건을 기록했다.

중국에서 한 고객이 핑안보험이 운영하는 무인 진료 키오스크인 '1분 클리닉'에서 약을 처방받고 있다. 핑안보험은 헬스케어 분야로까지 금융 생태계를 확장 구축하고 있다.

중국공상은행(ICBC)은 2015년 'e-ICBC' 전략을 발표, 전자상거래·메신저·금융거래 등 3개의 플랫폼을 출시했다. 특히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고객과 판매자를 연결해줄 뿐 아니라 결제·소액대출·자산관리 등 금융 서비스를 함께 제공함으로써 현재 ICBC 신규 디지털 판매의 80%가 이 플랫폼에서 나오고 있다.

파트너십이 핵심

생태계 구축에 성공하려면 단기적인 수익 창출에 몰두해선 안 된다. 플랫폼의 경쟁력을 확보한 후 성장을 추구하는 장기적인 '벤처투자(VC)' 접근법이 필요하다. IT 및 데이터사이언스 인재와 데이터 분석 역량을 확보해야 하고, 디지털 업체와의 광범위한 파트너십도 필수다. 예컨대 싱가포르 최대 민간 은행인 UOB는 7개 자동차 딜러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싱가포르 최대 자동차 생태계를 구축했다. UOB는 온라인 자동차 대출 서비스를 통해 3일 걸리던 자동차 구매 과정을 단 15분 이내로 대폭 단축했다.

호주 웨스트팩은행의 경우 벤처 인큐베이팅(육성) 업체인 스톤앤드초크(Stone & Chalk)와 손잡고 3단계에 걸쳐 각각 5000만달러 규모의 벤처캐피털 펀드를 조성했다. 무료 지역 기반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나보(Nabo)에 투자해 지역별 소비자 성향을 분석, 지방 소비자 맞춤형 금융 상품을 개발했다. 맥킨지 분석에 따르면 현재 100개 선도 은행 중 79%가 이미 결제·대출·투자 등의 혁신을 위해 핀테크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성장이 정체되고 디지털 전략을 고심하는 국내 금융업계에 디지털 에코시스템은 돌파구가 될 것이다. 비금융 회사와의 단순한 협업 및 핀테크 기술 활용을 넘어선 전략적 제휴 및 인수 등 다양한 협업 모델을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