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티 바차니 오토모티브·IoT사업부 수석 부사장
"소프트웨어 개발·오픈소스 지원해 자율주행 생태계 만드는 데 박차
삼성·LG·SK, ARM과 자율주행 시대 전면에 설 것"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 회사인 영국 ARM은 삼성전자나 퀄컴, 애플, 화웨이 같은 전 세계 유력 기술기업에 반도체 설계도를 만들어 판다. 직접 칩을 만들지 않고 기술에 대한 지적재산(IP)만 만들고 이에 대한 라이선스 비용을 받는 수익모델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ARM이 화제가 된 것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2016년 320억달러(약 38조원)에 인수했을 때, 지난 5월 미·중 무역전쟁을 이유로 ARM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하기로 하면서 화웨이가 그 어떤 제재보다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보도가 쏟아지면서다. 그만큼 ARM이 전 세계 기술기업 생태계에 작용하는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었다. 지난해 ARM 설계도를 가져다가 생산된 반도체는 229억개에 달했다.

ARM은 최근 자율주행차 솔루션을 내놓는데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손정의 회장이 ARM을 인수하면서 "바둑으로 치면 50수(手) 앞을 내다보고 인생 최대의 베팅을 했다"고 한 것처럼 현재 모바일 기기 주도권을 향후에도 가져가겠다는 포석이다. 1996년부터 자동차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ARM은 현재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IVI)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장 점유율 85%,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AP 점유율 60%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딥티 바차니 ARM 수석 부사장이 ARM의 자율주행 솔루션과 경쟁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18~19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조선비즈가 주관한 국내 최대 테크 콘퍼런스 ‘스마트클라우드쇼 2019’에서 기조연설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딥티 바차니 ARM 오토모티브·IoT사업부 수석 부사장을 19일 인터뷰했다. 바차니 부사장은 "전 세계 6000여명의 직원이 이끌어가고 있는 ARM이라는 회사 기술을 전 세계 인구의 70%가 접하고 있다"면서 "ARM은 차세대 기술에서도 리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텍사스 A&M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텍사스 오스틴대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한 바차니 부사장은 미국 반도체 회사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17년간 근무했다. ARM 입사 전에는 인텔 IoT(사물인터넷) 그룹 제품 관리·고객 지원부 부사장 겸 총괄로 근무하며 전반적인 제품 개발 로드맵, 기술 방향성 등을 맡기도 했었다.

-ARM 이전에 경쟁사였던 인텔에서 근무했다.

"기술업계는 친구와 적의 경계선이 흐릿하게 변화하고 있다. 인텔은 ARM의 가장 큰 고객이다. 한편으로 인텔은 몇몇 분야에서는 ARM과 경쟁하고 있다. 친구이자 강력한 경쟁자인 이른바 ‘프레너미(Frenemy)’인 것이다.

직원 수가 10만명쯤 되는 인텔과 비교하면 ARM은 작은 회사다. 전 세계 직원 수가 6000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ARM의 솔루션은 집에도, 차에도, 스마트폰에도 녹아들어 있다. 전 세계 인구의 70%는 ARM의 IP가 적용된 제품·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고작 6000명이 이끄는 ARM의 기술을 매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ARM은 어디에나 있고, 민첩하며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자율주행차용 반도체 설계는 기존과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소프트웨어부터 생각해보자. 자율주행이 가능하도록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관련 ARM은 최근 자율주행차용 내비게이션을 만드는 미국 스위프트(Swift)와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ARM의 기술을 통해 차량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고해상 지도를 구현하게 하는 것이다.

ARM은 오픈소스(무상으로 공개된 소프트웨어 소스 코드) 생태계 구축에도 공을 들인다. 과거에 없었던 혁신적인 특징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개발자들이 다양한 시도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ARM의 기술을 사용해 하드웨어 생산량도 빠르게 늘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자율주행을 가능케 할 수 있다."

-완전 자율주행 시대로 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우리는 AI(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다. AI는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율주행차가 도로에 나오려면 여러 환경 변화들을 빠르게 학습해야 하고, 각종 변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자율주행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것이 비행기다. 사람이 조종하지 않아도 하늘 위에서 이미 스스로 운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왜 차량은 도로에서 자율주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너무 많은 변수 때문이다. 도로에는 개·고양이도 돌아다니고 아이들도 뛰어다니고 갑자기 공이 떨어지기도 한다. 술 마신 운전자들이 차를 몰고 나왔을 수도 있다. 이런 변수들이 하늘에는 없다.

수많은 변수를 정량화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면 자율주행차 시대는 열릴 것이다. ARM은 자율주행차가 도로로 나올 수 있도록 안전·보안·성능의 관점에서 스스로 학습하는 최선의 솔루션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런 솔루션들은 에너지·비용이 많이 들어갈 것 같은데.

"업무에 맞는 프로세서를 적합하게 배치하면 에너지 효율도 개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머신러닝(기계학습)에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아니라 인공지능 연산을 하는 데 특화된 NPU(신경망처리장치)로 처리하게 하고, 이미지 처리는 ISP(이미지처리장치)가 맡게 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해당 처리에는 전력 소모가 많을 수 있지만 처리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전체 전력 사용량은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ARM이 설계한 자율주행용 멀티스레드 프로세서는 전력 소비량을 10배 정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내부 실험 결과로 확인됐다."

딥티 바차니 ARM 수석 부사장이 19일 스마트클라우드쇼 2019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자동차 업계와 협력하거나 협력할 계획이 있는가.

"한국에는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텔레칩스(반도체 설계회사) 같은 훌륭한 회사가 많다. 이들이 ARM의 IP를 통해 자율주행 시대 전면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ARM은 이들이 자율주행 시대 진정 필요한 솔루션들을 내놓고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나갈 것이다. 방한 기간중 이런 기업 고객들을 만날 것이다.

이번에 와서 보니 한국의 관련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가 굉장히 탄탄해서 놀랐다. 벤처캐피털(VC) 자금, 정부 지원이 혁신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AI, IoT, 5G(5세대) 이동통신, 빅데이터 등이 결합되는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면 전 세계 산업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디지털 전환은 ARM에 전례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우선 빅데이터는 더 많은 데이터가 데이터센터를 통해 처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ARM은 데이터센터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최근 발표했다.

IoT 하면 ‘연결성’을 떠올릴 수 있다. 작은 장치들이 서로 연결되고 더 똑똑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ARM은 트러스트존(TrustZone·프로세서 안에 독립적인 보안 구역) 기술, 펠리온(Pelion·IoT 디바이스 자체를 관리하거나 이런 기기가 창출하는 데이터 관리를 돕는 소프트웨어) 같은 솔루션이 있다. 여기에 5G까지 상용화하면 작은 기기부터 큰 자동차까지 광범위하게 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며 ARM의 솔루션이 적용될 수 있다.

AI는 CPU·NPU 등 ARM 기술에 이미 전반적으로 반영돼 있다. 불확실성이 큰 AI 시대에 기업들은 ARM 솔루션을 통해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고,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천천히 지켜보면서 서서히 발을 깊게 담글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ARM은 차세대 기술 시장에서도 리더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소프트뱅크가 최대주주로서 ARM이 성장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가장 큰 것은 ARM을 믿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한 것이다. 소프트뱅크가 투자하고 있는 비전펀드 포트폴리오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회사들이 포함돼 있다. 얼마나 광범위한 시각을 갖추고 있는지, 폭넓은 가치를 제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소프트뱅크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경쟁 우위를 갖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