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보유지분 10%로 제한…배당 매력 높지만 살 수 없어"

올해 들어 은행주가 부진한 것과 관련해 금융지주회사법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연기금이 비금융주력자로 분류돼 은행지주회사 지분을 10% 넘게 보유할 수 없도록 한 규정 때문에 주가가 많이 떨어지거나 배당을 많이 줘도 이미 거의 한도가 차 추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연기금은 8월 이후 유가증권시장 주식을 4조2000억원 넘게 사들이고 있으나, 전체 시가총액의 15% 넘게 차지하고 있는 은행주는 거의 매수하지 않고 있다.

특히 올해는 5월과 8월, 11월 등 3차례에 걸쳐 MSCI(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 리밸런싱이 진행되면서 지속적으로 외국인 자금이 한국시장을 떠나고 있다. 외국인이 이탈하는 판국에 연기금 또한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하면서 은행주는 수급이 꼬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은행주는 최근 소폭 반등하긴 했지만 올해 들어 부진의 골이 깊다. 하나금융지주(086790)KB금융(105560)은 지난해 말 미국 경기긴축 우려 당시와 비교해도 20% 이상 내려 있고, 우리금융, 신한지주(055550)도 연초대비 10~20% 하락했다. 18일에도 KB금융은 1.93% 내렸고, 하나금융과 신한지주는 1% 안팎 내렸다. 우리금융만 보합을 기록했다.

◇이익 둔화 우려 있지만 그래도 연 5% 배당 주는데…

최근 은행업 악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독일 국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논란이 있다. DLF 불완전판매가 인정돼 투자자들에게 갚아줘야 하는 것보다, 이 사태로 인해 비이자이익 영업이 둔화될 수 있다는 점이 리스크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외에도 경기 둔화 가능성, 금리인하 국면 등도 실적에 부담 요인이다.

하지만 그런 악재를 감안해도 올해 주가 부진은 심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무엇보다 은행은 올해 말 최소 연 5%의 현금배당이 예정돼 있다. 비이자이익이 감소할 것이란 우려가 크지만, 전체 이익 중 비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12% 선에 그친다.

최정욱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은 은행이 장기적으로 배당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내년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는 "내년 주당순이익(EPS)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폭은 5% 내에 불과할 것으로 보이고, 배당성향은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연 5%대 배당 매력이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인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주요은행 배당수익률이 5.4%인데 우리나라 은행도 이에 못지않다"면서 "더구나 국내 은행은 배당성향이 상대적으로 낮아 더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이익 안정성이 높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오히려 글로벌 주요은행보다 투자 매력이 높다고 본다"고 했다.

저평가 매력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은행업은 현재 주당순자산비율(PBR)이 0.4배 수준에 그치고 있다. 자산을 40%만 팔아도 시가총액을 모두 메울 수 있다는 의미다. 은행업은 다른 제조업과 달리 대부분 자산이 금융자산이라, 금융위기가 터지지 않는 한 회수가 수월해 PBR이 최소 1배에 가까워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비정상적인 가격", "연환산 배당수익률이 16%에 달할 정도로 낙폭 과대"라는 등 다소 자극적인 문구의 리포트를 쓰는 이유다.

최근 발간된 은행업 리포트 제목들

◇실적보다 수급 탓…"외국인은 기계 매도하는데, 연기금이 사줘야"

전문가들은 은행주 부진에 대해 실적 우려보다는 수급적 이유에서 배경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단 올해는 외국인이 금리인하 기조 때문에 은행주를 팔고 있다. 특히 한국은 MSCI 리밸런싱까지 겹쳐 외국인 이탈이 가파르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외국인은 은행주를 1조3000억원가량 매도했는데, 이는 대우조선해양법정관리 가능성 등 조선업 대란이 있었던 지난 2016년보다 3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김수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금융버블의 진원지로 주목받고 있는 외국 상장지수펀드(ETF)의 인덱스 자금이 은행주를 기계적으로 팔고 있다"면서 "국내 시장을 교란시키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런 판국에 연기금이 투입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부진의 골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연기금은 지난 8월 1일 이후 유가증권시장 주식을 4조2300억원 가량 사들이고 있다. 하지만 은행주는 도통 사지 않고 있다. 연기금이 가장 많이 산 100개 종목 중 은행지주회사는 신한지주와 DGB금융지주 등 딱 두 곳으로, 각각 48위, 64위에 올라 있다. 금융업이 전체 시가총액의 15.23%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연기금이 은행주를 사지 못하는 이유는 규제 때문이다. 현행 금융지주사법에 따르면, 연기금은 은행지주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수를 10%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초과하기 위해서는 금융위 승인을 얻어야 한다. 은행주는 이미 국민연금 지분이 10% 턱밑이기 때문에, 연기금 위탁운용사들은 은행주를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다. 더구나 연기금이 사지 못한다는 것을 다른 기관투자자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 또한 은행주를 외면하면서 계속 소외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정욱 애널리스트는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이 기형적인 은행 소유 구조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복지부, 우정사업본부는 과기부 산하로 담당 부처가 다르다는 점도 이 문제가 방치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라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하는 요즘은 과거와 달리 10%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은산분리 원칙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는 공감대 또한 있으니 이참에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