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삼성 TV 화면을 비춘) 현미경이 초점이 안 맞은 줄 알았다. 그만큼 화질이 흐릿하다."(이정석 LG전자 상무)
"(LG TV에선) 8K 동영상이 이렇게 깨진다. 준비가 덜 된 것 아니냐."(용석우 삼성전자 상무)
세계 TV 업계 1·2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7일 하루 서로를 겨냥한 TV 화질 비교 행사를 열었다. 두 회사가 상대 제품을 공격하는 행사를, 그것도 같은 날에 여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LG는 삼성전자 TV를 분해했고, 삼성은 LG전자와 자사 TV의 구동 성능 테스트를 하며 치고받았다. 업계 관계자들조차 "이런 모습을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제 막 커지기 시작하는 8K TV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면 죽는다는 두 회사의 절박함이 유례없는 혈투로 이어진 것이다.
◇삼성·LG 동시에 상대 8K 기술 공격
8K TV는 지금껏 나온 TV 중 해상도가 가장 높은 제품이다. 4K TV보다 4배나 좋은 화질을 자랑한다. 가격도 당연히 더 비싸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TV 시장의 향후 판도가 8K TV에서의 성패에 달려 있는 것이다.
'8K 공방'의 포문을 먼저 연 곳은 LG전자다. LG는 지난 7일 독일 베를린 IFA(유럽가전전시회) 현장에서 "삼성전자의 8K는 화질 선명도(CM)가 12%로 국제 기준(50% 이상)에 미달하는 가짜 8K"라며 선공에 나섰다. 그리고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8K TV 기술설명회'를 열어 2차 공세에 나선 것이다. LG전자는 LG와 삼성 TV를 동시에 갖다 놓고 어두운 밤하늘에 별빛이 반짝이는 영상을 틀었다. 삼성 TV에서 별이 잘 안 보이자 "백라이트 때문에 별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삼성 TV의 약점을 찔렀다. 남호준 LG전자 HE연구소장(전무)은 삼성전자의 55인치 QLED 4K TV에서 분해한 흰색 퀀텀닷 필름까지 꺼내 보였다. 삼성전자가 프리미엄 TV인 QLED TV를 만들 때 액정(LCD) 패널과 백라이트 사이에 덧대는 소재다. 그는 "이 필름만으로 스스로 빛을 내겠느냐. 그럴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4시간 뒤인 오후 2시엔 삼성전자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울R&D캠퍼스에서 반격에 나섰다. 삼성전자 역시 삼성과 LG TV를 갖다 놓고 같은 영상을 틀었다. 8K 화질의 동영상이었다. 삼성전자 TV에서는 재생이 잘 됐지만, LG전자 TV에서는 오류가 나 초록색 화면만 깜빡였다. 용석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상무는 "LG 제품에서는 8K 동영상이 재생되지 않거나 화면이 깨지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LG 측이 주장하는 낮은 화질 선명도(CM)에 대해서도 "흑백 TV 해상도 평가를 위해 사용됐던 기준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용 상무는 "8K 화질은 화질 선명도(CM)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밝기와 컬러 등 여러 광학적 요소, 화질 처리 기술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의 주장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제조 공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LCD(액정표시장치) TV에 퀀텀닷 필름을 붙인 QLED TV로 8K를 구현한다. LG전자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방식의 TV다.
◇프리미엄 TV 시장 패권 건 벼랑 끝 싸움
IHS마킷에 따르면 올 2분기 세계 TV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가 31.5%, LG전자가 16.5%다.
양사는 대형·프리미엄 TV 시장, 특히 차세대 TV의 주력인 8K 시장 주도권을 놓고 혈투를 벌이고 있다. 현재 8K TV 시장은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5종의 8K TV 신제품을 출시하며 55인치부터 98인치까지 풀 라인업을 완성했다. OLED TV 화질이 압도적으로 좋다는 자신감을 가져왔던 LG전자는 삼성전자가 8K 시장에서 앞서가면서 다급해진 측면이 있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 삼성전자의 QLED 8K TV가 LG전자 OLED 8K TV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도 LG전자가 상대적으로 강점인 화질을 강조하며 공격에 나선 배경으로 풀이된다. OLED는 뛰어난 화질을 구현하는 데 유리하지만 디스플레이가 커질수록 생산단가가 크게 늘어난다. LG전자가 지난 6월 내놓은 88인치 '시그니처 OLED 8K TV'는 5000만원이다. 반면 삼성전자 QLED 8K 85인치는 삼성전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2464만원에 판다.
앞으로 두 업체 간 8K 공방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이런 지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아직 대응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려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8K TV
화면 가로에 약 8000화소가 촘촘하게 박혀있는 TV. 세로는 약 4000화소로, 한 화면에 약 3200만 화소가 있는 셈이다. 4K TV보다 화소 수가 4배 정도 많다. 하지만 아직 8K를 지원하는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미국 넷플릭스가 초고화질 영화·드라마를 많이 제작하긴 하지만 아직 4K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