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산은과 수출입은행의 합병을 공식 제안한 이후 두 기관 간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수은은 합병 시 국제금융 시장에서 한국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 회장이 합병을 일방적으로 공론화한 점에 대해서도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지난 10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산은과 수은이 합병하면 훨씬 더 강력한 정책금융기관이 탄생해 될성부른 기업에 대한 지원도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합병론을 공식 제안했다.

이 회장은 산은과 수은이 통합하면 중복된 정책금융기능을 통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기관이 16곳이나 되고, 산은과 수은만 해도 중복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를 통합하면 인력과 예산을 효율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에 있어서 규모의 경제도 가능해진다. 두 기관이 합쳐지면 혁신기업에 거액을 투자할 역량이 생기는 것이다.

다만 이 회장은 이같은 합병 제안이 정부와 협의되지 않은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각 기관을 감독하는 금융위원회나 기획재정부와 사전 교감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그러나 갑작스럽게 합병 대상으로 지목된 수은 내부에선 격렬한 반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 회장은 현 정권 내에서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낼 수 있는 인사인 데다, 금융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그의 발언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수은 내부에서는 두 기관이 합병할 경우 국제금융 시장에서 한국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수은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유일하게 허용되는 중장기 수출금융 기관인 공적수출신용기관(ECA)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수은이 산은과 합쳐질 경우 경쟁국은 수은이 획득한 이 지위를 문제삼을 수 있다. 그 경우 수출 보조금 지원 대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

수은은 이 회장이 수은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합병론을 공론화한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수은 노동조합은 "현 정권에 어떤 기여를 해 낙하산 회장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정책금융 역할에 대해 이래라저래라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이 회장은 업무영역과 정책금융 기능에 관한 논의로 본인의 경영능력 부재와 무능력함을 감추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