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준비 없이 귀농귀촌하면 실패할 확률 높아

경기도 여주에 사는 김삼순(54)씨는 오랫동안 남편과 함께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 2006년 홀로 귀농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억대 농부’ 성공기를 보고 ‘농사나 지어볼까’라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김씨는 경기도 여주에 땅을 구입해 무화과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일했지만 연 수입이 100만~200만원밖에 안됐다. 1차 귀농은 3년 만에 실패로 막을 내렸다.

두 번째 도전은 첫 번째와 달랐다. 전략적으로 준비했다. 농업기술센터 바이오대학원에 다니며 농업의 기초부터 새로 배웠다.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블로그 ‘삼수니아즈메’도 개설했다. 블로그에 소득작물로 선택한 여주를 기르는 과정을 비롯해 시골 하루의 일상, 반려동물 키우기 등을 있는 그대로 일기 쓰듯 기록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시간은 걸렸지만 단골이 조금씩 늘었다. 600㎡로 시작한 여주 밭은 지금 1만㎡ 규모로 커졌다. 연간 소득은 3억원쯤으로 돈도 남부럽지 않게 번다.

김씨는 "비료 포대를 옮기고, 예초기로 풀 베는 작업 등 여자가 하기 힘든 일이 많지만 섬세한 일은 여자가 더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귀농귀촌 희망자들이 귀농귀촌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김동욱(55)씨는 2017년 10월부터 아내 이은주씨와 함께 전남 장성으로 내려와 딸기를 키운다. 하우스 안에 시설을 만들어 영약액으로 딸기를 재배한다. 그는 도시에서 사업을 하던 중 ‘뇌지주막하출혈(뇌동맥의 꽈리가 터져서 생기는 병)’로 두 번이나 큰 수술을 받았다. 생명은 건졌지만 말을 더듬고, 기억력이 많이 나빠지는 등 후유증이 컸다. 건강을 위해 도시보다 시골에서 생활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김씨와 아내 함께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당시 18개월에 불과했던 늦둥이 아들의 육아 문제도 고려했다. 이곳 저곳 고민하다 아내의 고향으로 내려왔다. 아무리 자연이 좋아도 외지보다는 친척이 살고 있는 곳이 적응하기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귀농한지 불과 2년밖에 안됐지만 지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2017년 귀농해 1년 만인 2018년 3104㎡ 규모로 딸기 농사를 지어 6000만원쯤의 매출을 올렸다.

김씨 부부는 지역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아내의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부부는 오랫동안 도시에서 살아 농사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했다. 부부는 농업기술센터가 새내기 귀농인들을 고참 귀농인과 연결해주는 ‘멘토·멘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당시 귀농 8년차인 이장호(54) 멘토로부터 딸기 농사를 배웠다. 멘토는 하루에도 수차례 부부의 농장을 찾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부부를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쳤다. 김씨는 지역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단체에도 여럿 가입했다. 한 달에 한 번 마을에서 진행하는 행사에도 빠지지 않는다.

김씨는 "딸기 재배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어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시작했지만 지역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멘토의 도움을 받아 이제는 안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골살이가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도시생활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자 로망이었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시에는 일자리가 많았다.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들은 자식을 도시로 유학보냈다. 자식들은 기대에 부응해 도시에 있는 기업과 관공서 등에 취업했다.

‘베이비 붐(baby boome)’ 세대. 이들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잘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나이를 먹자 정 많았고 아련한 추억이 남은 고향을 그리는 이들이 많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다.

귀농귀촌 희망자들이 호박재배 농장을 찾아 현장 교육을 받고 있다.

도심에서 태어난 이들도 시골생활을 동경하는 이들이 많다. 옆집에서 사는 사람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각박한 인심과 공해에 찌든 환경에서 벗어나고 픈 것이다.

매년 시골에 내려가는 귀농·귀촌인구도 상당하다. 농식품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귀농귀촌인구는 2017년 50만명, 2018년 49만330명을 기록했다. 이들 중 50대와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35%쯤 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지역에 정착해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시골생활에 실패해 역귀성하는 인구도 적지 않다. 마을주민과의 문화차이로 갈등을 겪고, 생활비 부족 등의 문제로 다시 도시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영농실패, 일자리, 건강, 자녀교육 등이 거론된다. 농촌진흥청이 귀농·귀촌인의 농촌 정착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2014년 귀농·귀촌인 1039명의 동의를 받아 준비·이주·정착과정·경제활동 등 변화 추이를 5년 동안 조사한 결과를 보면 도시로 되돌아간 경우가 8.6%다.

귀농·귀촌이 ‘성공적’이라고 답한 비율이 2014년 46.2%에서 2018년 58.1로 높아졌지만 10명 중 4명은 농촌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귀농·귀촌인들은 정착 과정의 어려움으로는 ▲여유자금 부족(46.9%) ▲영농기술 습득(27.1%) ▲생활불편(25.1%) ▲농지 구입(25.0%) 순으로 답했다.

농진청 직원들이 귀농한 농민의 딸기 농장을 찾아 기술을 지도하고 있다.

농촌 정착기간이 길어지면서 소득을 높이기 위해 농업과 다른 경제활동을 병행하는 겸업 비중도 늘어나는 추세다. 농산물 가공, 관광·체험, 숙박·식당 등으로 경제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 이는 농업만으로는 돈벌이를 하기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귀농·귀촌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동화가 수반돼야 한다. 실제 농촌에 정착한 이들은 마을개발사업에 참여하거나 청년회 부년회 지도자회 등 리더로서의 활동이 많다. 시간도 필요하다. 조사결과 농촌 정착 후 시간이 흐를수록 귀농·귀촌이 ‘성공적인 편’이라는 평가가 증가했다. 농진청 조사에 따르면 2014년 46.2%였던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2018년에는 58.1%로 올라갔다.

전북 김제에 귀농한 최규원(59)씨는 "경제적인 활동없이 단순히 시골에서 살 것인지, 농업을 통한 경제활동을 할 것인지를 미리 고민해야 한다"며 "농업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라면 이리 어떤 작물을 키울지 결정하고 재배법 등을 꼼꼼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