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증시 부진이 계속되면서 신규 기업 상장(IPO)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공모가를 결정할 때 기업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상장 후 주가 흐름이 부진한 경우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반면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는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은 늘고 있다. 스팩 합병이 활발해지면서 최근 공모주 시장에선 스팩 청약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최근 큰 폭으로 오르락내리락해온 코스피 지수는 이날 0.62% 상승한 2032.08에 거래를 마쳤다.

IPO '주춤'… 스팩 합병 상장 인기

국내 증시가 급락세를 보였던 지난 8월에는 기업공개 시장이 얼어붙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은 11곳(코스피 1곳, 코스닥 10곳)으로 작년 같은 기간(16곳)보다 30%가량 줄었다. 증시 불확실성이 커져 상장을 해도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올 들어 상장한 기업들의 절반 이상이 부진한 주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올해 증시에 신규 상장한 기업(이전 상장과 스팩 상장 제외) 35개사(코스피 2곳, 코스닥 33곳) 중 20개사(57%)의 주가가 9일 종가 기준으로 공모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에스피시스템스(+95.1%) 웹케시(+75.6%) 등 주가가 크게 오른 종목도 있었지만, SNK(-55.8%) 이노테라피(-47.5%) 아이스크림에듀(-45.8%) 등 20% 이상 주가가 하락한 종목도 14개나 됐다. 상황이 이렇자 어린이 콘텐츠 기업 캐리소프트는 공모 절차를 중단하고 상장을 미루기도 했다.

신규 상장이 줄어든 반면, 스팩 합병을 통한 우회 상장 시도는 확연히 늘고 있는 추세다. 올 1분기(1~3월)에 스팩 합병 상장을 신청한 기업은 2곳이었는데, 2분기에 6곳으로 늘었고 3분기는 10일까지 총 7곳이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스팩 합병 상장이란, 이미 증시에 상장돼 있는 페이퍼컴퍼니인 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다. 스팩은 애초에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모은 뒤,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목적으로 상장되는 서류상 회사다. 가장 최근인 지난 6일 거래소에 스팩 합병 상장을 신청한 반도체공정용 기계를 만드는 네온테크라는 기업의 경우 'DB금융스팩6호'와 합병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진입하려 하고 있다. 상장에 성공하면 앞서 DB금융스팩6호가 모은 공모자금 100억원을 조달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기업 입장에선 직상장을 할 때 기대에 못 미치는 공모가가 매겨지는 등 불확실성을 피하는 동시에 이미 조달된 자금을 안정적으로 끌어올 수 있어 유리하다"고 했다.

스팩 청약 경쟁률도 고공행진

스팩 합병 사례가 늘고, 스팩에 대한 일반 투자자의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스팩 투자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고 있다. 작년엔 스팩이 증시에 상장될 때 공모주 청약 경쟁률이 두 자릿수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세 자릿수 경쟁률이 다반사다. 지난달 30일 상장된 '상상인이안제2호스팩'의 경우 일반 청약 경쟁률이 297대1이었다. 그보다 앞서 20일 상장된 '미래에셋대우스팩3호'는 경쟁률이 508.4대1, '이베스트이안스팩1호'는 1431.1대1에 달했다.

스팩은 보통 기업과 합병 전까지 주가가 크게 변하지 않고 공모가 주변에서 움직인다. 그러다 스팩이 우량 회사와 합병에 성공할 경우 상승 동력을 얻는 경우가 많다. 만약 3년 내에 합병 기업을 찾지 못해 상장 폐지가 되더라도 투자자는 원금 손실을 보지 않는 게 특징이다. 주주들에게 원금에 더해 3년치 이자(연 1.5~2% 안팎)까지 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병 성공 후 주가가 반드시 상승하는 것은 아니며, 합병 후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