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급한 청년, 50만원 소액결제하고 35만원 손에 쥐어
결제 상환 못하고 통신요금까지 연체하면 파산 내몰려

"50만원 소액결제 현금화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대신 결제액의 70%만 드립니다. 30%는 수수료로 보시면 됩니다."
"현금은 어떻게 받나요? 제가 그쪽 사무실로 가면 되나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문자로 발송되는 인증코드랑 계좌번호만 주시면 결제 완료된 걸 확인하고 계좌로 바로 넣어드립니다."
"결제만 되고 현금을 안 넣어주시면 어떻게 하나요? 소액결제 현금 사기 많다고 하던데요?"
"고객님. 제가 4년 동안 휴대폰 번호 한 번 안 바꾸고 이 사업 계속 하고 있습니다. 하루이틀 일하고 그만둘 것도 아닌데 먹튀하겠습니까? 이건 믿고 하는 거래입니다."

최근 휴대폰 소액결제 한도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이른바 '소액결제 깡'이 청년 세대에서 번지고 있다. 빚을 갚지 못하고 신용불량 직전까지 몰린 청년들이 마지막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는 게 소액결제 깡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인터넷에 있는 휴대폰 소액결제 현금화 업체들의 광고 글.

휴대폰 소액결제는 전자상거래를 통해 물건을 구입할 때 휴대폰 본인 인증을 통해 다음달 통신요금에 구입 비용이 청구되도록 하는 결제 방식이다. 통신요금은 결제가 이뤄진 다음달에 청구되기 때문에 지금 당장 통장 잔액이 없어도 결제가 가능하다. 사실상 신용카드와 마찬가지인 구조다.

휴대폰 소액결제 현금화 업체들은 이런 구조를 이용해 신용카드 깡을 하듯이 소액결제 한도를 현금화해주고 30% 정도를 수수료 명목으로 챙긴다. 소액결제 한도가 50만원이라면 소액결제 깡을 통해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은 35만원이다. 업체는 소액결제로 확보한 게임머니나 아이템을 현금화해준 돈보다 비싸게 팔아서 이윤을 남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올해 PC 온라인 게임 내 결제 한도가 폐지되는 등 전자상거래 관련 규제가 약해지는 추세라 이런 소액결제 깡이 더 성행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소액결제 한도가 초기화되는 매달 1일은 소액결제 깡 업계의 '대목'이라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정부와 포털업체들은 휴대폰 소액결제 현금화와 관련된 검색어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보고 막고 있지만, 지식인이나 카페, 블로그 등을 통해 관련 내용을 얼마든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선비즈가 직접 휴대폰 소액결제 현금화를 검색해서 업체와 통화하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소액결제 깡에 내몰리는 건 2030 청년층이 많다고 한다. 휴대폰 소액결제에 익숙한 청년 세대가 소액결제 깡의 유혹에 더 쉽게 내몰린다는 것이다. 한 전자결제업체 관계자는 "중장년층은 소액결제 현금화의 구조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기에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청년층은 모바일 게임이나 온라인 쇼핑을 하면서 소액결제를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소액결제 깡에도 접근하기 쉬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내에 소액결제를 이용한 적이 있다고 답한 '2030'의 비율은 50%에 달했다. 평균 이용률의 두배 정도에 달한다.

연령대별 개인파산 접수 건수 추이.

소액결제 깡은 구조상 한 번 이용하면 빚을 갚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소액결제 깡을 이용할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청년은 소액결제액이 포함된 통신요금까지 연체할 가능성이 크다. 통신요금까지 연체되면 정상적인 사회 생활과 금융 생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파산의 목전에 다다른 것이나 다름없다. 통신요금은 채무조정 대상에도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연체가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이 채무가 불어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소액결제 깡 같은 신종 서비스가 청년층의 금융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보고 있다. 청년 경제활동을 연구하는 시민단체인 내지갑연구소에 따르면, 20대의 파산 접수 건수는 2013년 628건에서 지난해 811건으로 늘었다. 5년 동안 29.1%나 증가했다. 내지갑연구소 관계자는 "휴대폰 소액결제 깡을 진행한 뒤 통신요금을 제때 내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을 수 있다"며 "소액결제 깡이 통신요금 연체와 청년층 파산 증가의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액결제 깡은 불법의 여지가 많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통신 과금 서비스를 이용해 자금을 융통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소액결제 깡을 해주는 업체는 통신 과금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결제한도를 중개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소액결제 깡 업체 관계자는 "당연히 합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없다"고 이용을 권하기도 했다.

정보통신망법의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뿐 아니라 금융결제 관련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도 특별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