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퇴사한 후 7년 째 전업투자자로 활동 중인 박성열 씨(가명·만 71세)는 금융상품에 투자할 때마다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 불만이다. 금융상품 내용과 위험에 대한 고지를 수 차례 받아야 하는데다 가입하려는 금융상품이 증권사에서 정한 ‘투자권유 유의 상품’에라도 해당되면 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인과 자식들은 모두 해외에서 살고 있는데, 조력자 연락처를 달라는 증권사 직원의 요구도 고역스럽다. 향후 초고령자인 80세가 되면 금융상품 가입시 조력자가 배석해야 한다는 증권사 직원의 말에 더욱 답답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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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령 투자자를 상대로 파생금융상품을 불완전 판매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고령 투자자 보호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일부 전문 고령 투자자들이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오는 11월부터 각종 투자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전문 투자자’ 요건을 완화해 개인 전문 투자자를 늘리겠다고 나섰지만, 고령 투자자들은 제외하는 현행 방침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위는 2015년 8월 ‘고령 투자자 보호 종합 방안’을 통해 70세 이상은 고령 투자자, 80세 이상은 초고령 투자자로 정하고 금융투자상품에 가입할 때 여러 제약을 뒀다. 금융투자협회의 표준투자권유준칙에 따라 위험도가 높은 상품은 ‘투자 권유 유의 상품’으로 지정하고 고령 투자자에게 판매를 자제하도록 하고 있다. 초고령 투자자의 경우 투자를 희망한다고 해도 필요한 경우에는 금융회사가 판매를 거부할 수 있도록 정했다. 고령 투자자가 금융상품에 투자할 때는 조력자의 연락처를 확보해야 하고 초고령자의 경우에는 현장 배석, 또는 전화 통화 등으로 투자 동의를 받도록 했다.

금융위는 2017년 4월부터 투자자 숙려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고령 투자자가 공모방식의 파생결합증권(ELS·DLS), 신탁과 펀드를 통한 파생결합증권 투자상품(ELT·ELF) 등의 상품에 가입할 때 청약 마감 2영업일 전까지 청약하고, 이후 숙려기간(2영업일)을 거쳐 최종 투자 여부를 확정하는 제도다.

강화된 보호 제도 탓에 금융투자회사 지점 곳곳에서는 직원과 고령 투자자 간 실랑이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나이 외에 투자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호 정책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생결합증권 투자잔액의 40%가량을 60대 이상이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들의 민원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파생결합증권의 발행잔액은 101조원으로 이 중 개인투자자 비중은 전체의 46.7%(47조2000억원)이었다. 개인 투자자 중에서는 60대 이상 고령 투자자들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60대 이상 개인투자자 투자금액은 전체 잔액의 41.7%(19조7000억원)이었다. 50대 투자자들은 전체 잔액의 30.7%(14조5000억원)이었다. 40대 투자자들의 비중은 18.4%(8조7000억원)이었다.

금융위는 고령자 보호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금융투자 상품이 더욱 복잡해지면서 고령 투자자 보호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불완전 판매 논란이 된 DLF의 경우 만 70세 이상 고령 투자자가 보유한 잔액이 1761억원으로 전체 투자잔액(하나은행·우리은행)의 2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보호 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됐다.

금융위는 11월부터 ‘전문 투자자’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지만, 고령 투자자는 여전히 열외로 두기로 했다. 전문 투자자는 일반 투자자에게 적용되는 투자권유 절차 의무가 면제되고 공·사모 판단의 기준이 되는 청약 권유 대상 50인 이상 여부 판단 시 합산 대상에서 제외된다. 제약없이 자산을 굴릴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반투자자, 전문투자자 구분과 별개로 고령 투자자들은 투자 보호 대상"이라며 "고령 투자자가 전문 투자자 요건에 해당한다고 해도 전문 투자자로 등록할 수 없고 지금과 동일한 표준투자권유 준칙 및 보호 규정 적용을 받는다"고 했다.

전업투자를 하고 있는 한 고령 투자자는 "고령층에 고액 자산가가 집중돼 있는 만큼 고령 투자자를 나이로 일률적으로 배제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을 만든 뒤 선별해서 전문투자자로 받아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