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페이스북과 방송통신위원회 간 1심 결과가 나온 뒤 통신업계와 인터넷 콘텐츠기업(CP)들의 갈등이 더 격화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승소하면서 망 사용료를 두고 벌이는 양측의 갈등이 일단락될 것으로 관측된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동영상을 중심으로 트래픽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통신업계 입장에서는 CP들로부터 망 사용료를 받아내야 합니다. 특히 통신사들은 성장이 정체된 유무선시장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미디어·플랫폼·콘텐츠 사업에 적극 뛰어드는 중입니다.

통신사와 CP들과의 사업 영역이 겹치며 두 업계는 협력과 동시에 관련 생태계의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펼칠 수 밖에 없습니다. 망 사용료 문제는 단순히 비용을 떠나 향후 ICT 생태계 주도권을 놓고 펼치는 ‘전초전’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각 자의 시각과 이익에 따라 해당 사안의 해석이 달라지는 만큼 양측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정답’을 찾기 힘든 문제로, 양 진영의 의견을 모두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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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항소 의지...통신업계 vs CP 논리 싸움 더 치열해진다

지난 22일 한국 법원은 통신사와 글로벌 CP의 망 사용료 협상에 영향을 끼칠 소송에서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에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CP들은 향후 한국에서 막대한 트래픽을 사용하면서도 추가 부담을 갖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앞서 방통위는 2019년 3월 페이스북이 국내 통신사와 협의 없이 해외로 접속경로를 변경, 접속 속도를 늦춰 한국 사용자에게 피해를 줬다는 이유를 들어 과징금(3억9600만원)을 부과했습니다. 페이스북은 이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년 5개월 만에 법원이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판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방통위는 망 사용료 가이드라인 제정을 계속 추진하는 한켠 대법원까지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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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는 패소 직후 "막대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페이스북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접속경로를 대역폭이 좁고 속도가 느린 해외구간으로 변경해 서비스 접속지연, 동영상재생 장애 등 국내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발생시켰다고 판단했다"며 "이번 소송은 접속경로 변경에 따른 이용자 이익 침해 여부를 다툰 것으로, 글로벌 IT 업체의 망 이용 대가에 관한 것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1심 판결을 보더라도 방통위가 재심에서 이를 뒤집을 확률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 일각의 분석입니다. 1심에서 페이스북은 법률 대리인으로 김앤장에 과징금(3억9600만원)보다 많은 수임료를 지급해가며 소송을 준비했습니다. 2심이 이뤄지더라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고, 방통위가 이기기에는 국내 법률적 근거가 충분치 못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CP "망 비용 증가는 IT산업 국제경쟁력 약화 불러올 것"

현재 통신사들과 개별 계약을 맺어 망 이용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네이버, 카카오, 아프리카TV, 왓챠플레이 등 국내 CP들도 페이스북의 승소가 망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인터넷기업협회는 "방통위와 과기정통부, 이동통신사는 국내외 CP 간 ‘역차별’이 문제라고 주장해왔고, 물론 규제 이슈 등에 있어서 국내 CP에게 불리한 지점은 존재한다"면서 "그러나 논란이 되는 ‘망 비용’ 문제에 있어서 핵심은 망 비용의 지속적 증가와 이를 부추기는 ‘상호접속고시’"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지난 2016년 동등한 수준의 망사업자(통신사)들이 상호 간의 데이터 전송에 따른 비용을 정산하지 않는 무정산 원칙을 폐기하고, 데이터 발신자의 부담으로 정산하도록 상호접속고시를 개정했습니다. 정부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통신사 간 상호정산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통신사가 IT 기업의 망 비용을 지속해서 상승시킬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고착화한 것이란 게 국내외 CP들의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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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중립성과 망 상호접속 문제를 다루는 국제 비정부기구인 PCH(Packet Clearing House)가 2016년 148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9.98%의 인터넷 협정이 무정산 방식이었으며, 오직 0.02%만이 상호정산 방식을 채택했다는 것이 CP들의 근거입니다.

인터넷기업협회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상호접속고시와 과점 상태인 국내의 망 산업이 결합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망 비용이 증가하는 나라가 됐다"며 "가뜩이나 높았던 망 비용이 상호접속고시 개정 이후 더욱 증가해 국내 CP의 망 비용 부담문제가 불거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IT 기업과 이용자가 없다면, 통신사도 성장할 수 없는데 정부는 여전히 문제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채 CP들의 부담과 의무만 늘리는 규제를 만드는 데에 골몰하고 있다"며 "정부는 역차별 해소를 명분으로 망 이용 계약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이는 오히려 국내 CP에게 부과돼 온 부당한 망 이용 대가를 정당화하고 고착시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통신업계 "망 대가로 인해 IT 산업 경쟁력 약화됐다는 근거 없어"

이에 국내 통신사들을 대변하는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반박 의견을 내놨습니다. KTOA는 "페이스북 사건으로 부각된 문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망 비용의 증가’가 아니라 일부 극소수 대형 글로벌CP의 ‘망 비용 회피’"라며 "일부 극소수 대형 글로벌 CP는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망 비용(대가)를 내지 않고 있으므로 ‘망 비용의 지속적 증가’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입니다.

정부가 상호정산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통신사가 망 비용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고착 시켰다는 CP들의 주장에 대해 KTOA는 "상호접속은 통신사간 서로 망을 이용하고 지불하는 대가로 상호정산은 서로 이용한 것에 따라 정산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CP가 제공하는 콘텐츠가 텍스트 위주에서 고화질 동영상으로 변경되면서 트래픽이 증가해 CP는 매출도 늘고 콘텐츠 수급비용도 늘고 망 이용 비용도 늘어나는 것은 정상적인 구조이나, CP가 부담하는 망 이용비용의 회선당 단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져왔다"고 설명했습니다.

KTOA는 또 해외 사례를 들었습니다. 해외에서도 통신사간 접속료를 지불·정산하는 경우가 많으며, 최근에는 트래픽 증가에 따라 기존의 무정산 관계도 정산방식으로 전환되는 추세라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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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로 2013년 미국의 대형 통신사인 레벨3(Level3)은 컴캐스트에 보내는 트래픽이 많아짐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게 되고, 넷플릭스 또한 버라이즌 등 미국내 주요 통신사와 대가지불 계약을 체결하는 등 동영상과 같은 일방향 대용량 트래픽의 증가에 따라 ‘페이드 피어링’(Paid Peering)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페이드 피어링이란 망 사용을 더 많이 할수록 대가를 더 많이 지불하는 망 접속 유형입니다.

또 프랑스 통신규제기관인 ARCEP를 인용해 프랑스 내 페이드 피어링의 비중이 2012년 20%에서 2018년 54%로 증가하고 있다고 예로 제시 했습니다. 최근 프랑스 정부의 공식 조사에 의하면, 올들어 이 비중이 77%에 달하는 등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는 게 KTOA의 설명입니다.

KTOA는 "CP가 없으면 통신사도 성장할 수 없지만, 통신사의 네트워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발전이 없으면 CP도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CP도 트래픽 유발 및 통신망으로 얻는 혜택에 맞게 망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상호정산 시행으로 페이스북이 망 대가를 내게 돼 역차별이 일부 완화된 점을 고려할 때, 국내 스타트업과 CP가 상호정산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CP 시장에서 자신들의 최대 경쟁사업자이자 시장포식자를 도와주는 것과 동일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네이버 등 국내 주요 CP의 망 비용 부담은 매출의 1.8% 수준에 불과하며, 오히려 대형 글로벌CP가 아예 망 비용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며 "대형 글로벌 CP는 그만큼의 망 비용 조차 부담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이 국내CP의 경쟁력 저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