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또 다시 ‘긴장모드’에 돌입했다. 대법원이 29일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50억원 이상(말 3필+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뇌물을 건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고 실형이 선고되면 ‘총수 부재’ 상황을 또 맞게 된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제외, 불황 속 대규모 투자 결정 등 대내외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오너의 리더십 부재는 일본 수출 규제처럼 급격한 변화가 생길 때 기업이 발빠르게 대응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 회사 로고가 들어간 간판이 보인다.

◇ 일본 수출 규제 해결 오너가 나서야

그동안 삼성전자는 한·일 관계 악화 상황 속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분주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가 시행되자 일본으로 날아갔다. 현지 금융권 관계자들을 만나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5박6일간 일본 출장을 마친 다음, 긴급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일본 규제가 전 제품에 미칠 가능성을 시나리오별로 철저히 대비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IM(스마트폰)과 CE(TV·가전) 부문 협력사에 ‘일본산 소재·부품을 최소 90일분 이상 확보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삼성전자는 일본 정부의 두차례 허가를 통해 포토레지스트(감광액) 9개월분을 확보하고 벨기에 등에서도 조달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고순도 불화수소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입은 막혀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경영진과 실무선에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문제 해결에 나서겠지만, 사태가 악화될 경우 오너 중심의 수습이 불가피하다"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폭넓은 네트워크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삼성전자나 국가 경제에 손해"라고 말했다.

◇ 디스플레이, OLED 전환 투자 결정 못해

삼성디스플레이 충남 아산사업장 전경.

삼성전자의 또 다른 고민은 대규모 투자 결정이다. 중국이 바짝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기 투자에 실패하면 자칫 지금의 우위를 빼앗길 우려가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국의 저가 공세로 LCD(액정표시장치) 사업이 부진하자 출구전략으로 대형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해 OLED·퀀텀닷(QD) 전문가로 유명한 서울대 교수 출신 이창희 부사장을 영입했다. 200여명의 개발 관련 인력도 갖췄다. 하지만 10조원에 육박하는 거액의 투자를 비상경영 상황에서 과감히 결정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삼성전자는 평택 2사업장, 화성 EUV(극자외선) 라인 건설 등에 있어 속도조절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 시황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연말이나 내년 초 시황이 반등하면 발빠른 의사결정이 필수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반도체·디스플레이는 조단위 투자가 필요한 산업으로 전문경영인이 의사결정을 하기가 어렵다"면서 "5G(5세대) 이동통신이 본격화하면서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 신시장이 열리고 있는 만큼 미래를 내다보는 앞선 투자에 오너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