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섭 크로커스 에너지 대표 인터뷰
AI 이용해 산업용 전기요금 5~7% 절감… 코닝이 고객사
韓 산업용 전기료 90% 상승… 자동화 필수 솔루션 되고파

"한국 대표 철강회사 중 하나인 현대제철의 1년 전기요금은 1조원 이상입니다. 공정 변화 없이 연간 5~7%(약 500억~700억원)의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전력 효율화는 자동화, 스마트 공장의 시작입니다."

지난 20일 만난 임지섭(Daniel Lim) 크로커스 에너지(Crocus Energy) 대표는 "한국은 산업용 전기요금이 비싼 편에 속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규모 공장을 가동할 경우 전기요금이 운영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지섭 크로커스 에너지 대표.

임 대표는 "한국의 경우 1kWh당 산업용 전기요금이 100원(약 10센트) 수준인데, 대만은 70원, 미국 남부지역은 5~6원 정도"라며 "탈원전 정책 등의 영향으로 전기요금 인상 압력도 높은 편"이라고 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84.2% 상승(2018년 기준)했다. 같은 기간 주택용 전기요금 상승률(15.3%)의 5.5배 수준이다. 한국은 IT 산업 외에도 조선,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등 중공업이 발달한 국가이기 때문에 대규모 공장, 설비도 적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임 대표는 미국 카네기멜런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브라운 대학에서 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딴 후 2016년 6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크로커스 에너지를 설립했다. 삼성SDI 미국법인과 미국 스타트업 유틸리데이터(Utilidata)를 거치며 에너지 산업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것이 에너지 스타트업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GE, 지멘스 등 대기업이 전력 관리 효율화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고객이 한국의 한국전력 같은 전력 공급 업체라는 점에 주목했다. 정작 전력을 소비하는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효익을 얻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솔루션은 없었던 것이다.

"기술적으로 설명하자면 ‘전압 최적화(voltage optimization)’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 고객 등 전력 사용자를 위해 전압 최적화 서비스를 시작한 건 크로커스가 최초입니다."

크로커스 에너지 첫 화면.

크로커스 에너지는 전력 사용량이 많은 대규모 공장, 기업을 대상으로 전기요금 절감 솔루션 ‘파워 세이버(Power Saver)’를 선보였다. 비용 상승 압박이라는 기업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 불편한 점)’를 찾아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파워 세이버를 적용하면 전기요금을 5~7% 절약할 수 있으며 공정 변화, 전력 사용 패턴 변화 없이 솔루션 적용 전과 같은 조건에서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다.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고릴라글라스’를 만드는 강화 유리 업계 세계 1위 기업 코닝이 크로커스의 고객이다. 미국 철강회사 US스틸과 포스코가 합작한 ‘USS-POSCO Industries’도 크로커스의 솔루션을 사용한다. 임 대표는 "한국코닝은 크로커스의 솔루션을 통해 연간 10억원 이상의 전기요금을 절약하고 있다"며 "한국코닝의 성공 사례가 공유되면서 중국, 대만 등 다른 지역에 있는 코닝의 현지 법인들도 솔루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파워 세이버는 대규모 전력 데이터, AI(인공지능) 머신러닝 알고리즘 두 핵심축으로 작동한다. 미터기라고 부르는 에너지 데이터 수집 장치는 GE·지멘스가 만들고, 공장에서 물리적으로 전압을 높이고 낮추는 장치(OLTC)는 독일 기업 MR이 세계 1위다. 크로커스 에너지는 이 두 영역 사이를 파고들었다.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최적화된 전압을 제시, 전기요금을 절약한다. 수집하기만 할 뿐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데이터를 의미 있는 정보로 바꾼 것이다.

성장 가능성을 본 벤처투자자들이 이미 시드(seed, 초기) 투자를 진행했다. 지난해 퓨처플레이, 베이스인베스트먼트 등이 총 10억원을 투자,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이 225만달러(약 27억원)로 늘었다. 미국 노스이스턴(Northeastern) 대학 전기공학 박사이자 업계 전문가인 이호준 부사장이 사업 전략을 총괄하며 실리콘밸리 레드우드 시티에 본사, 서울 역삼동에 자회사가 있다.

크로커스 에너지 파트너사.

임 대표는 특히 한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전기를 많이 쓰는 국가고 그중에서도 산업용 비중이 60%로 크다. 전력 사용량 1위인 미국은 산업용 비중이 20%, 가정용은 60%로 가정에서 쓰는 전기가 더 많다. 올해 4월 한국전력 자회사인 켑코에너지솔루션과 파트너십도 체결했다.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 고객을 만나다 보니 다른 문제점도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하는 곳도 많았던 것. AI 기술·소프트웨어로 공장 관리 효율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일반 공장이 스마트 팩토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게 임 대표의 꿈이다.

"미국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관계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세일스포스(Salesforce)’처럼 많은 기업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기업용 솔루션으로 자리 잡고 싶습니다. 전력뿐 아니라 공장 자동화(industrial automation) 분야의 핵심 운영시스템(OS)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