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블록체인 같은 신기술은 기존 단순 근로자의 일자리를 바꿀 수 있지만, 절대 뺏진 않습니다. AI·블록체인은 근로자를 돕기 위해 나온 기술입니다."

안재훈 IBM 글로벌 금융 서비스 부문 CTO(최고기술책임자)는 AI·블록체인을 비서 같은 기술로 비유하며 이같이 밝혔다. 안 CTO를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IBM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숙련공과 신입직원 사례를 들었다. 숙련공은 모든 정보를 알고 있지만, 신입 직원은 기초 매뉴얼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AI는 이런 사소한 점부터 도울 수 있다는 게 안 CTO 설명이다.

안 CTO는 "AI는 신입에게 실시간으로 신속하게 세세한 매뉴얼 등을 알려줄 수 있다"며 "숙련공에게는 자신이 하는 일의 과정에 맞춰 공구 등을 건네주는 똑똑한 비서가 생기는 셈이다"고 말했다. "일자리 방식이 과거 산업혁명 때와 자동차 발명 때처럼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IBM코리아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 중인 안재훈 IBM 글로벌 금융 서비스 부문 CTO(최고기술책임자).

안 CTO는 IBM에서 몇 명 안 되는 한국계 임원으로 글로벌 금융 부문 사업을 맡고 있다. 은행 등 금융산업을 대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일을 한다.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로봇공학 전공으로 학사, 전기공학 및 컴퓨터공학 박사를 각각 취득해 신기술의 원리도 잘 안다.

안 CTO는 AI·블록체인 같은 기술이 금융산업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진단했다. 금융산업은 많은 돈이 움직이는 전통 산업 중 하나다. 여러 종류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돈이 어디로 흐르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으로 알려져 신기술 도입을 꺼리는 산업 중 하나로 꼽혀왔다.

안 CTO는 "흔히 금융산업은 보수적으로 알려져 신기술을 도입을 꺼려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며 "어떤 측면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진보적이고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도 금융산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조업 같은 경우에는 신제품을 만들려면 시제품을 만드는 등 까다롭지만, 금융산업은 몇 분이면 상품 하나가 나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또 안 CTO는 많은 사람이 블록체인을 암호화폐 ‘비트코인’과 동일시 여기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안 CTO는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에서 나온 기술 중 하나이지 블록체인 그 자체가 아니다"며 "블록체인도 사행성으로 생각해 싸잡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블록체인은 중앙 통제에서 벗어나면서도 해킹이 불가능에 가까운 뛰어난 기술"이라고 말했다.

IBM 블록체인을 활용해 스마트폰으로 식품관리를 하는 모습.

IBM은 컨테이너 추적, 자산관리, 관세신고, 디지털 ID, 공급망 관리, 식품관리 등 모든 분야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과정이 투명하게 공유되면서 허가를 받은 자들만 접속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AI로는 고객의 패턴과 정보를 분석해 카드 사기를 막고 대출·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다.

이처럼 AI와 블록체인의 기술은 금융산업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향후에는 디지털 신분증 분야로도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디지털 신분증이 생기게 되면 작은 칩 하나로 신분 확인이 가능해 계좌 개설·비행기 탑승 등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국내에서 AI·블록체인 같은 신기술의 산업 적용은 어렵다. 규제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데이터 규제 등으로 은행 데이터 활용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 규제를 완화하는 빅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3개법안 개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반면, ‘선 개발 후 규제’ 정책을 지향하는 중국의 경우 핀테크(Fin-tech, 금융과 기술의 합성어)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 그룹 KPMG가 발표한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리스트를 보면 중국의 경우 11개 기업이 올랐지만, 한국은 2개(비바리퍼블리카, 데일리금융그룹) 기업만이 진입했다.

안 CTO는 규제 준수도 중요하지만, 은행이 가진 데이터를 안전하게 쓸 수 있게 정부가 나서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CTO는 "이제는 모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며 "전 세계적으로 은행 관련 데이터를 활용하는 분석 기법이 뜨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은행들이 자신들의 데이터를 다른 업체들과 함께 유의미하게 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