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요지 만주(满洲)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뿌리 깊은 인연
'만주'·'간도' 표현 기피하는 중국…러시아에게는 자원의 땅이자 군사적 요지

동북아는 격랑의 지역이다. 오늘은 동북아의 요지 만주(满洲)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만주가 어디냐는 질문을 받으면 어렴풋이 그려지는 지역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 당국은 만주를 ‘지역’ 개념으로 언급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그 지역에 대해서 ‘동북’이라고 하는 것이 공식적이다. 현대 중국의 지도상에도 만주로 검색되는 지명은 멀리 내몽고의 만주리를 빼고는 그다지 없다. 중국의 주류인 한족을 제외한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인구로 볼 때 세번째 내지 두번째 정도를 점하는 ‘만주족’을 거론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만주족이 청나라를 만들었다. 만주족의 여진이 후금을 세우고 후금이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청나라는 중국대륙 마지막 봉건왕조로 기록된다. 만주족의 땅은 백산흑토(白山黑土)라 했다. 이들이 강성해 지면서 17세기 중반 만리장성 동쪽 초입 산해관(山海關)을 넘어 화북으로 진입하며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 중국의 역사에 산해관이 자주 등장하는 까닭은 이곳의 서쪽이 고래로 중국의 주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주도 동북도 모두 산해관의 동쪽에 있어서 관동(關東)인 것이다.

중국은 청나라는 말할 것 없고, 그 이전 어느 시기의 만주 지역도 중국의 땅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거란의 요나라는 당연히 중국 역사의 일부분이며, 중국어로 시보리야(西伯利亚)인 ‘시베리아’의 일부분도 중국의 땅이었다고 본다. 시베리아의 어원도 선비(鲜卑∙시엔베이)라는 말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이다. 지금의 러시아 사할린 섬도 중국 관점으로는 ‘동북’의 일부이다.

차르 러시아가 만주 남서쪽 대련(大连)을 점령하고 있을 당시의 시청.

그렇기 때문에 현재 러시아의 영토인 만주의 동남쪽 부분 즉 블라디보스톡, 하바롭스크, 사할린섬을 포함한 지역은 역사적으로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시기에 러시아에 빼앗긴 땅이 되는 것이다. 중국 이름으로 블라디보스톡은 하이션와이(海参崴), 하바롭스크는 보리(伯力), 사할린섬은 쿠예(库页 또는 苦叶)섬이다.

러시아는 이 지역을 원동(遠東)이라고 부른다. 유럽쪽 러시아에서 아주 멀리있는(Дальний) 동쪽(Восток)이라서 원동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러시아 원동을 러시아 극동이라고 번역 한다. 서유럽이 한∙중∙일 등 유라시아 동쪽을 일컫는 극동과는 또 다른 개념의 극동이다. 차르 러시아는 16세기 말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동쪽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시베리아는 러시아어로 시비르(Сибирь)이다. 러시아어로 북쪽을 뜻하는 세볘르(Север)가 어원이라는 설과 함께, 비슷한 발음의 타타르나 몽골의 신, 또는 원래 그 땅에 있던 마을이나 하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베리아라는 말에 대해 중국에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선비(鲜卑∙시엔베이)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있고, 몽골어로 진흙∙진창을 뜻하는 시보얼(西波尔)에서 왔다는 쪽이 있다.

17세기 만주로 진격해 오는 러시아군을 막기 위해 청나라는 순치제 때 조선 병력을 동원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러시아를 나선(羅禪)이라 불렀다. 그래서 그 출병을 나선정벌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17세기 후반 청나라 조정은 백두산, 두만강, 압록강 이북을 자신들 만주족의 발상지라 하여 청나라∙조선 어디 사람이건 접근을 못하게 하는 봉금 지역으로 선포했다. 이후 1689년 청나라 강희제와 차르 러시아는 네르친스크 조약을 통해 만주 대부분의 땅이 청나라에 귀속되어 있다고 서로 확인했다.

일본은 1932년 만주땅에 ‘만주국’을 세우고 만주족 청나라 마지막 황제를 내세워 일본의 공식 식민지로 만들었다. 장춘(长春)을 수도로 삼고 이름을 신경(新京)으로 바꾸었다. 사진은 만주국 황궁 가운데 근민루(勤民楼).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仪)는 1934년 근민루에서 만주국 황제 즉위식을 가졌다.

그러나 1842년 청나라는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패한 신세가 되어 난징조약으로 홍콩 등을 빼았겼다. 만주쪽에서는 1860년 러시아가 청나라와 베이징조약을 통해 우수리강 동쪽의 원동 지방을 가져갔다. 중국은 이 조약들을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이라 한다. 베이징 조약 이후 중국은 한반도의 동해쪽 태평양으로 나가는 해안이 막혔다. 중국인들은 원동 지역을 외(外)동북 혹은 외(外)만주로 표현한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원동 지역은 연해주(沿海州)라는 말로 통한다. 바다와 붙어있는 땅이라는 의미겠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에게 연해주라고 말하면 못 알아 듣는다. 중국인에게 연해(沿海)는 상해, 천진, 청도 등 중국해 연안 지역을 뜻한다.

원동을 획득한 러시아는 1898년에 만주 서남쪽 여순∙대련을 조차권을 통해 자신들의 수중에 넣었고 만주의 다른 지역들도 점령했다. 만주에서 러시아의 지배권을 인정해 주고 한반도를 유린하던 일본은 만주를 노려 러시아와 러일전쟁을 시작하고 1905년 승전했다. 이후 일본은 남쪽 만주를 사실상 지배한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졌다. 일본은 야욕을 구체화하여 1932년 만주땅에 ‘만주국’을 세우고 만주족 청나라 마지막 황제를 내세워 일본의 공식 식민지로 만들었다. 현대 중국이 ‘만주’라는 단어를 기피하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그 와중에 여러 이유로 남쪽 만주로 건너간 한반도 사람들이 많다. 일본과 한반도에서는 이 지역을 간도라고 불렀다. 간도 이름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다. 실제로는 청나라가 봉금한 지역에 들어가면서 두만강 하중도(河中島)로 가는 척 했다 해서 간도(間島), 조선인이 들어가서 개간했다 해서 간도(墾島), 한반도의 북동쪽에 있다해서 간도(艮島)라는 이야기들이다. 어쨌든 현대 중국에서는 간도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1909년 10월 만주의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다. 안의사는 1910년 3월 교수형되기 전까지 만주 남서쪽 여순 감옥에서 명필 유묵(遺墨)을 다수 남겼다. 위 사진은 하얼빈 공원에 만들어 놓은 안의사 유묵 조각이다. ‘연지(砚池)’는 이백의 시에 등장하는 말로, ‘큰 강물(三湘)을 벼루로 삼는다’는 기개를 상징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소련은 협의의 만주, 즉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에 중화학공업을 지원했다. 중국 동북 지방은 개혁개방 후 급성장한 중국 동남 연해의 도시들에 비해 발전이 더딘 측면이 있지만 중국 당국은 이 땅을 중시한다. 국방, 자원, 농업, 공업 등 측면에서 전략적 지역으로 본다.

현대 러시아에게 원동은 석유와 가스를 비롯한 자원의 땅이다. 또 태평양과 동북 아시아로 진출하는 군사적 요지이다. 푸틴은 이 지역의 경제 개발을 위해 원동 개발부를 설립했다. 원동 지방과 시베리아에서 열리는 ‘보스토크’는 러시아 최대 규모의 군사 훈련이다. 러시아 대통령이 참관한다. 중국, 몽골, 터키도 이 군사훈련에 참가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긴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사회주의를 같이한 역사 등을 공유하는 특수한 관계이다. 위에서는 만주를 둘러싼 두나라의 이야기를 살펴 보았다. 우리는 한국 전쟁 이후 미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과 교류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관심과 교류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는 시장경제를 운위하는 러시아, 중국과 교역하며 상호 이익을 추구해 오고 있다. 시장이 협소한 한국으로서는 지역적으로도 붙어 있고 소비자의 규모도 큰 두 나라와의 경제적 거래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한 현대의 디지털 경제와 글로벌 교역이라는 두가지 테마만으로도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 러시아 시장을 포함한 세계로 활동 범위를 넓힐 동인이 된다. 더구나 동북아의 정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될수록 육로로 연결된 경제권은 활성화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광의의 중국어권 시장과 러시아어권 시장도 함께 묶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 필자 오강돈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 GM, CJ 국내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디자인기업, IT투자기업 경영을 거쳐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 등을 집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판매, 사업을 총괄했다. 한중마케팅(주)를 창립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