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디지털 편집국 문화전문기자

소설가 김영하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괜스레 부아가 끓었다. ‘예능 프로 ‘알쓸신잡'으로 스타가 되니 책 20만 부도 게 눈 감추듯 팔리는군.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같은 고상한 집요함은 없을 게 뻔하잖아.' 웬 걸. 뒤늦게 읽어보니 흡인력이 대단했다. 소설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 자동연상됐다. ‘청춘의 문장들'이 그러했듯 ‘여행의 이유'에는 해 질 녘 마을 어귀에 선 소년 같은 서정, 영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식의 예측불허 해프닝이 갈피마다 흥건했다.

예컨대 그의 첫 해외여행은 대학 시절 ‘재벌'들이 운동권 학생 교화 차원에서 보내준 ‘중공’ 여행 패키지였다. 귀 밑에 키미테를 붙이고 비행기에 올랐던 남조선 청년은 베이징 대학 기숙사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마오쩌둥 초상화 대신 미국 지도와 토플책만 발견하고 심하게 충격을 ‘먹는다’. 변화의 물결에 놀란 이 얼뜨기 사회주의자는 그 여행 이후 인생 궤도를 대폭 수정했다. 세월이 흘러 소설가가 된 그는 중국 푸동 공항에서 추방당하는데(어이없게도 비자를 빼먹었다는 이유로), 그 덕에 서울의 자기 방으로 돌아와 소설 한 편을 완성한다. 위험과 전화위복, 우연과 환대가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는 점에서 김영하의 인생과 여행, 소설은 매우 닮았다.

문득 90년대, 일본행 비행기를 탔던 젊은 날의 내 첫 해외여행의 기억이 소환됐다. 낯 모르는 이가 갑자기 옆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졌고(공황 발작으로 의심됨), 공항 보안요원은 때맞춰 나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다. 테러 배후로 지목된 줄 알았건만 편도 행 비행기를 끊었다는 게 이유였다. 귀국 티켓이 없는 자는 불법체류자로 의심받던 시절.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알고 보면 나는 ‘귀소 본능'이 매우 강한 인간이었다. 어찌어찌 풀려나 당시 우에노 공원에 가보니 고국을 떠나 배회하는 청춘들이 참으로 많았다.

떠나면 알게 될 거라고들 하지만, 돌아와야 완성되는 것이 여행이다.

"별거 아냐. 귀국행 비행기표를 쭉 찢으면 그때부터 시작이야. 새 세상이 열리는 거라고."

‘환타지 없는 여행'을 쓴 여행 작가 ‘환타’는 자신의 말을 듣고 귀국행 비행기표를 찢고 국경을 넘던 젊은이들이 돌아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걸 보고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떠나면 행복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여행이 남은 인생을 구원해 주지는 않는다. 그 뒤론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돌아올 이유를 찾고 귀국 날짜를 정해야 진짜 여행"이라고 일갈한다. 돌아올 길을 불태우면 그때부터 국제 거지가 되는 거라고.

저글링과 공중 외줄 타기를 하며 히피처럼 남미를 떠도는 여행 작가 노동효도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는 아마존 뱃길을 10일간 횡단해서 기어코 투표장이 있는 페루 리마에 도착해 투표권을 행사한다고 한다. 그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가' 정체성이 희미해질 때, 그 유랑의 좌표를 다잡아주는 것은 결국 모국이라는 거점이다.

너무 당연해서 자주 잊는 것도 ‘돌아올 곳과 기다려주는 이’가 있다는 게 인생 여행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100년을 사신 철학자 김형석 선생은 아내와 사별한 후, 미국 딸네 집에 있다 서울행 비행기를 타면 울적해진다고 했다.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는데 빨리 가서 뭐하누…’ 허둥대던 발걸음이 느려지더라고. 얼마 전 후배가 어머니를 여의고 울먹일 땐 가슴께가 뻐근해졌다. "이젠 여행 떠날 때 내가 어디로 갔다 언제 돌아오는 지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게 이상해요. 상실의 감각이 그런 식으로 온다는 게 이상해요."

그러고 보면 김영하는 완벽할 정도로 초현실적인 여행자였다. 군인 가정의 자녀로 어린 시절을 전학과 이주로 보낸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늘 떠나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뉴욕에 2년간 터 잡고 살 때나, 돌아와 불현듯 부산의 바닷가에 정착할 때나 그리고 이따금 자신이 창조한 소설이라는 가상 세계로 여행을 떠날 때나 그 자신, ‘꿈속의 꿈'처럼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여행을 지속하는 느낌이라고.

대체 귀환의 원점이 없는 여행이란 어떤 느낌일까.

여행 중에도 또 여행을 떠났던 사람을 생각하면 ‘위대한 개츠비'를 쓴 미국 작가 F 스콧 피츠 제럴드와 젤다 피츠 제럴드 부부가 떠오른다. 산더미같은 여행 가방을 싣고 다니며, 재능을 불태우다 일찍 생을 마감한. 끝없이 여행하며 삶을 리셋했던 피츠제럴드 부부는 묘지에서 정주했다. 최근엔 아예 길 위에서 사는 부부도 보았다. 요리사 허지희와 구급대원 사무엘 주드는 2평 남짓한 밴으로 유럽 곳곳을 떠돌며 ‘가끔 여행하고 매일 이사합니다'라는 책을 썼다. 주차장에서 자고 샤워 팩으로 씻는 그들의 불편한 전투는 역설적이게도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것이라고.

고백하자면, 내 유년도 소설가 김영하처럼 ‘지속이 불가능할 것 같은 삶' 전학과 이사의 나날이었다. 짐을 풀고 싸는 날이 이어지면 삶이 늘 ‘임시 상태’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행인 건 이주의 후유증엔 그에 대한 보상도 따른다는 것. 살아온 날을 중간 정산해 보니 위험과 전화위복, 우연과 환대의 경험을 남보다 더 많이 누렸다. 여러모로 내 인생은 어리둥절과 얼떨결의 연속이었지만, 항상 필요한 순간에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왔다.

올여름 휴가엔 아이들을 데리고 여러 곳을 헤매고 다녔다. 울산, 창원, 진해, 가평, 홍천…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타고 친척과 친구 집, 캐러밴과 펜션을 전전하는 동안 아이들은 더 날쌔지고 놀랍도록 새까매졌다. 나는 믿는다. 태양의 열기는 사그러들었지만 길 위의 이웃들에게 받은 선의와 환대의 기억이, 남은 계절 동안 9살, 7살 두 아이를 훌쩍 성장시키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