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부산대 서울대 등서 잇따라 도입...5G 인프라 첨단 수업환경 지원 기대

‘홀로그램’ 교수가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은 가상현실(VR) 환경에서 화학실험을 하거나, 의료 실습을 한다.

공상과학 영화의 장면이 아니다. 미국 스탠퍼드 의과 대학은 2016년 ‘VR과 신경 수술 시뮬레이션 센터’를 설립해 VR을 수술 설계와 학생 교육에 도입했다. 같은 해 중국 베이징이공대학은 정치 이데올로기 수업에서 VR 기술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장정(大長征)’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VR을 비롯한 4차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이 한양대 부산대 서울대 등 국내 대학에도 파고들기 시작했다. 걸음마 단계지만 시공간적인 한계를 극복해 학생들에게 다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홀로그래피⋅VR...‘무사고’ 화학실험에 도전

김민경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는 지난 한 학기 동안 3개의 강의실에서 동시에 수업을 진행했다. 김 교수가 스튜디오에서 '생활 속의 화학' 과목을 가르칠 때 실물 크기로 재현된 김 교수의 홀로그래피가 3개의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한 것이다. 한양대가 지난 3월 세계 대학 최초로 개설한 5G(5세대) 이동통신과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기술 결합 강의 사례다. 한양대의 교육 실험 하이라이브(HY-LIVE)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한양대 교육혁신팀에서 자체 개발했다.

김민경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교수가 홀로그래피로 진행하는 ‘생활 속의 화학’ 수업. 김 교수의 인사에 학생들이 손을 흔들어 화답하고 있다.

텔레프레즌스는 멀리(Tele)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존재(Presence)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기술을 말한다. 스튜디오에서 강의를 진행하면 각기 다른 강의실에 홀로그래피로 송출된다. 스튜디오에 설치된 강의실 화면을 통해 김 교수는 학생들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3개 강의실이 연결돼 학생들 사이의 토론도 가능하다. 한양대 관계자는 "안산 에리카 캠퍼스와 서울 캠퍼스를 연결하는 수업을 2학기에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양대에서 ‘일반화학'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올해부터 VR 화학 실험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위험한 물질이 폭발해도, 실험장비를 떨어트려도 안전하다. 기술경영학과 류호경 교수가 총괄을 맡은 ‘VR 교육 도서관’의 콘텐츠 중 하나다. 실험 도중 황산이 피부에 닿으면 연기가 나면서 ‘병원에 가야 한다’라는 메시지까지 출력된다. VR 화학 실험실은 김민경 교수와 앙츠, 글로브포인트가 함께 만들었다. 한양대는 올 2학기에 VR을 이용한 수업을 5개 추가하기로 했다. VR 환경에서 이뤄지는 수업이 6개로 늘어나는 것이다.

한양대 기술경영학과 연구팀은 "향후엔 14개의 콘텐츠를 만들어 한 학기의 강의가 모두 VR로 구성될 수 있게 하겠다"라며 "화학에서 물리, 그리고 수학까지 콘텐츠를 확대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공학⋅의료 영역에서 우선 도입

4차산업혁명 기술은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과 시⋅공간적 제약이 심한 실험을 수반해야하는 공학과 의학 교육에서 빛을 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험장비 노후화로 사고 위험이 존재할뿐더러, 실험할 공간도 부족해 학생들이 실험에 참여하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폐용액 처리 등 실험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양대 연구팀은 "공과대 ‘일반화학’ 수업에서만 6000만 원 정도가 실험 실습비와 용액처리비로 들어간다"라고 전했다.

학생 각자에게 컴퓨터가 필요한 강의도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삼육대 경영정보학과 최성욱 교수는 "코딩 수업의 경우 수요보다 강사나 교수의 공급이 적고 한 교실에 설치할 수 있는 컴퓨터 수량이 제한돼 있어 동시에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 쉽지 않다"라며 "VR 강의는 코딩 교육에서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대 학생이 VR 기술을 접목한 시모돈트(Simodont) 기기를 사용해 치아를 삭제하는 실습을 하고 있다.

VR는 해부학 등 시신을 확보해야 하는 수업에서는 물론, 다양한 의료 실습에서도 학생들에게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다. 의료 교육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의 실습이 직업 숙련도와 직결된다.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은 2018년 3월부터 VR 기술과 햅틱(Haptic
·촉감)기술을 접목한 시모돈트(Simodont)를 '가상치의학실습실'에 도입했다. 치과보철학 이소현 교수와 치과보존학 곽상원 교수의 '가상현실 치의학 실습'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VR을 통해 가상 환자의 치아를 깎는 실습을 할 수 있다. 임상에서 측정하기 어려운 환자의 치아 삭제율이 그래프로 나타나 학생들의 실습 만족도도 높다. 서울대에서도 관련 기기 3대를 보유 중이다.

의료 영역 신기술을 소개하는 수업을 4년째 맡고 있는 최형진 서울대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 교수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헬스케어 기술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학생들은 VR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터인 ‘서지컬마인드’를 이용해 수술을 실습해 보기도 하고, ‘엡손’의 스마트 글래스를 사용해 신체 구조를 3D로 관찰하기도 한다.

최 교수는 "(해부학 지식을 실감나게 접할 수 있다면) 신체 장기들의 위치와 방향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어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기가 더 쉬워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스탠퍼드대나 하버드대 같은 곳보다 먼저 새로운 기술의 개척자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라고 자신했다. 최 교수의 수업은 오는 9월에도 개설된다.

최형진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해부 신체구조의 3D 영상 소프트웨어와 3D 프린팅 기술 활용 연구 및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5G가 첨단 환경 수업 날개 달아준다

대학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4차산업혁명의 기술들이 반드시 5G 환경에서만 구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련 수업을 도입한 대부분의 대학들은 "4G(LTE)망으로 수업을 진행 중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사용자의 몰입이 필요한 콘텐츠의 경우 LTE와 5G 환경을 비교했을 때 화질이나 생동감 등에서 (사용자들이)체감하는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현실에서는 즉각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시선에 따라 보이는 장면도 그에 맞춰 빠르게 바뀐다. VR 등을 이용한 교육의 현실감을 높이는데 ‘응답 속도’가 중요한 이유다. 현실과 비교해 해상도가 떨어지고, 느리게 반응한다면 사용자의 콘텐츠 몰입도는 떨어진다.

5G 통신기술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다. 5G는 초고속·초연결·초저지연을 특징으로 한다. VR 콘텐츠처럼 해상도가 높은 대용량 파일도 빠르게 전송할 수 있다. 전송 지연율이 낮아 사용자의 반응도 실시간으로 반영할 수 있다.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은 5G 통신 기술 덕에 서울 서초구에 있는 김범성 KCC 전무이사를 홀로그래피로 불러와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양대 관계자는 "한양대와 KCC 간에 구축돼 있던 5G 네트워크 덕분"이라며 "5G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다면 더욱 다양한 수업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