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설가 윌리엄 서머싯 몸이 1935년 발표한 단편소설 '로터스 이터(The Lotus Eater)'에는 은행 지점장 출신 토머스 윌슨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서른에 아내를 잃고 하나 남은 딸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삶의 목표를 잃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버티다가 결국 35세에 살던 집과 재산을 모두 정리한다. 이 돈으로 60세까지 25년간 지급받는 연금 상품을 산 뒤 볕 좋은 이탈리아 카프리 섬으로 이주한다.

윌슨은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 산책도 하고 수영을 즐긴다. 각지에서 여행 온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스스로 말하는 '완벽하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사람들은 윌슨이 60세가 지나면 완벽하게 행복했던 삶을 스스로 마감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윌슨은 연금이 끊긴 후 6년을 더 살다가 비참하게 생을 마쳤다. 죽는 날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60세까지만 연금을 받도록 설계했던 윌슨의 비참한 말로다.

오래전 출간된 이 소설은 최근 우리 사회 현상과 맞물리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노후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은퇴 후 오래 살게 되는 위험을 '장수 리스크'라고 한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장수 리스크는 0.74로 추정돼 미국(0.32), 일본(0.29), 영국(0.33) 등 선진국보다 2.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수 리스크가 0.74라는 것은 실제 은퇴 기간이 자신의 예상보다 평균 74% 길다는 뜻이다.

은퇴 후 50년 가까이 더 살아야 하는 시대에 내가 죽기 전에 노후 자금이 먼저 떨어지는 건 그야말로 재앙이다. 길어진 수명만큼 은퇴 자산의 수명도 절대적으로 연장될 필요가 있다. 노후 자산 수명을 자신의 수명과 맞추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사망할 때까지 받을 수 있은 종신형 연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대표적인 종신연금이다. 국민연금의 장점은 물가 변동을 반영해 연금 지급액이 조정돼 현재 가치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 선에 그쳐, 이것만으로는 노후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사적 연금으로 노후 자산을 보강해야 하는 이유다.

연금보험 상품에 가입해 노후 기간 연금을 받는 방법에는 종신형 외에도 확정형과 상속형이 있다. 종신 연금형이 생존해 있는 동안 지속적으로 연금을 받는 상품이라면, 확정 연금형은 한정된 기간에만 연금을 받고, 상속 연금형은 생존 기간에 적립금의 일정 부분만 연금으로 받다가 사망 이후 수익자(혹은 상속자)에게 적립금을 물려주는 방식이다.

확정 연금형은 10년, 15년, 20년 등 연금을 받는 기간을 사전에 정한다. 정한 기간에 적립액을 인출하므로 연금 수령액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윌슨의 사례처럼 장수 리스크에 노출된다. 확정 기간을 늘릴수록 수령액은 줄어들며, 기간 내 사망할 경우 남은 적립액은 상속된다. 종신 연금형은 오래 살수록 유리하지만 조기 사망하면 적립금을 다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10년, 20년, 30년, 100년 등 지급 보증 기간을 설정하면 가입자가 일찍 사망하더라도 남은 기간에 수익자(혹은 상속자)가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급 보증 기간이 길어질수록 연금 수령액은 감소한다. 상속 연금형은 적립액은 그대로 두고 이자만 받는 방식으로, 적립금을 상속 재산으로 물려주고자 할 때 선택할 수 있다.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으로도 부족한 현금 흐름은 투자 자산으로 보완할 수 있다. 저금리 환경에서 은행 이자보다 투자 수익률이 높으면서 정기적인 소득이 창출될 수 있는 투자 자산이 바람직하다. 채권과 배당주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투자 자산은 기대 수익이 높을수록 위험도 커지므로, 은퇴 자산으로 편입되는 투자 자산은 위험 관리가 병행돼야 하며 전체 자산 중 일부만을 분산 투자해야 한다.

해외 채권, 특히 브라질 국채는 높은 금리와 비과세 혜택이 장점이다. 10년 만기 브라질 국채는 이자 지급에 적용되는 표면금리가 10%에 달하고, 매매수익률은 8%에 육박한다. 국가 간 조세협약에 따라 채권 투자에 따른 수익(이자수익, 시세차익, 환이익)은 비과세 된다. 다만 브라질 국채는 헤알화로 투자되므로 브라질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 이자 수익을 뛰어넘는 환손실이 발생한다. 환율은 주가보다도 예측이 어렵고 변동성이 크다는 게 단점이다. 환율이 흔들리고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손실이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기준금리가 1.5%로 내려갔기 때문에 이자보다 많은 배당을 지급하는 배당주도 주목할 만하다. 2010년 이후 예금은행 수신 금리는 3.87%에서 1.86%로 낮아진 반면, 코스피 배당수익률(배당금/주가)은 1.2%에서 2.2%로 높아졌다. 물론 배당주도 주가 변동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배당 소득을 웃도는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늘 유의해야 한다.

'로터스 이터'를 직역하면 '연꽃 먹는 사람'이지만, 현실 감각이 부족한 사람 혹은 몽상가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스 신화에선 로터스(연꽃 열매)를 먹으면 세상 근심을 잊고 몽상에 빠진 채 나날을 보낸다고 한다. 현실에서 도피한 데 따른 책임은 결국 스스로 부담해야 할 몫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후 생활 고민을 털어버릴 수 있는 완벽한 해법이 주어졌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에 현금 흐름이 꾸준히 창출될 수 있는 노후 자산을 마련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