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이 올해 1분기(1~3월) 1000원어치 물건을 팔아 손에 쥔 돈은 57원이다. 지난해 1분기에는 91원을 남겼다. 기업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매출액 영업이익률만 놓고 보면 장사가 신통치 않았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분기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실적을 종합해 발표한다. 올해 1분기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매출액은 484조3000억원으로 1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영업이익은 27조8000억원으로 36.96% 줄었다. 반도체를 비롯한 전기·전자, 화학 등 주력 수출산업이 부진했다.

기업의 올해 2분기 실적 발표가 얼추 마무리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7월 말까지 2분기 실적을 발표한 상장사 125곳의 2분기 영업이익은 22조3146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보다 38.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분기보다 상황이 더 악화됐다. 그렇다고 3분기가 희망적인 것도 아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분기 실적은 참담한 수준으로 이익 감소의 충격이 크다"며 "교역환경의 개선 시점을 낙과하기도 쉽지 않아 실적 회복 시점을 예상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전 세계 경영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지는 데다 일본 수출 규제까지 겹쳐 기업 환경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데 대통령의 경제 상황 인식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한국 제외 등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해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대통령의 공식 발언이라고 믿기 어렵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응해 정부가 내놓은 부품·소재·장비 국산화 대책도 당장 급한 불을 끄기에는 역부족인데 대통령이 남북 경협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국민 눈높이와 전혀 맞지 않는다. 남북 경제협력이 우리 경제에 극적인 성장 효과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게 경제학자들 대부분의 분석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남북 경협으로 풀자는 발언은 대통령의 경제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통령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경제 인식 오류는 결국 참모진의 책임이다. 최근 만난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경제학자들은 이념을 떠나 대통령에게 현 경제상황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해법을 직언할 수 있는 경제 전문가가 곁에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21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과 윤종원 경제수석을 교체하고 후임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을 임명했다. 취임 1년도 안 된 청와대 ‘경제 투톱’을 조기 교체했다. 하지만 김상조 정책실장 등 신임 청와대 경제라인은 한목소리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소득주도성장 등 기존 경제 정책 기조는 큰 변화가 없다는 얘기다. 결국 도돌이표다.

무너진 경제 생태계를 복원하려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 맞게 경제정책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부작용을 낳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에 더는 집착하지 말고 규제 혁파를 통한 혁신성장에 올인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기업에 힘이 되는 정책이 절실하다. 지금의 경제 상황이 지속된다면 ‘극일(克日) 메시지’만으로는 내년 총선도 다음 대선도 현 집권당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