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가 미국의 무역 제재에도 기술 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독자 운영체제(OS)·전략 스마트폰을 발표함과 동시에 스마트 TV 시장에도 출사표를 냈다. 거대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탈(脫)미국’ 독자 생태계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따른다.

화웨이 사옥 전경.

화웨이는 11일(현지 시각) 마무리한 2019 화웨이개발자대회(HDC·Huawei Developer Conference)에서 독자 개발한 운영체제 ‘훙멍(鴻蒙·태고의 세계)’과 대화면 고성능 스마트폰 메이트30 프로(Mate 30 Pro), 신형 스마트 TV 룽야오(荣耀·Honor) 비전(Vision) 등을 공개했다.

화웨이의 첫 독자 OS 훙멍은 기존 스마트 기기에 쓰이고 있는 구글 안드로이드를 대체할 OS다. 영문명은 하모니(Harmony)로, 화웨이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9개국과 유럽연합(EU)에 상표권 등록을 마친 상태다. 위청둥 화웨이 소비자 부문 최고경영자는 "훙멍은 사물인터넷 시대를 맞이해 스마트폰 외에도 태블릿, TV, 인공지능 스피커, 자동차 등 여러 곳에 쓰이는 범용 OS가 될 것"이라고 했다.

훙멍 OS가 쓰이는 첫 제품은 이번 행사에서 공개된 화웨이의 첫 스마트 TV 아너 비전이다. 이 TV에는 화웨이가 자체 제작한 홍후(Honghu) 818 칩셋이 쓰였다. 55인치 4K 패널로, 가격은 보급형인 아너 비전이 3799위안(약 65만원), 고급형인 아너 비전 프로가 4799위안(약 82만원)이다. 화웨이는 오는 15일부터 중국 내 아너 비전 TV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양 측면에서 미국의 견제를 받고 있지만, 화웨이는 신제품 출시를 예정대로 이어갈 전망이다. 이날 IT전문 외신들은 왕청루(Wang Chenglu) 화웨이 소비자 비즈니스 그룹 부문장의 발언을 인용해 "오는 9월 19일 메이트30 시리즈를 유럽에 출시한다"고 보도했다.

화웨이 메이트30 시리즈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10과 같은 대화면 플래그쉽(Flagship·기함) 스마트폰이다. 화웨이는 이번 개발자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메이트30 시리즈 출시 일정을 밝히진 않았다. 그러나 외신들은 왕 부문장 발언을 바탕으로, 화웨이가 9월 6일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 2019에서 메이트30 시리즈를 공개하고 곧이어 유럽에 출시한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화웨이 프리미엄 스마트폰 ‘P30’.

또 왕 부문장은 "메이트30 시리즈에는 독자 개발한 기린(Kirin) 990 모바일AP가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기린은 화웨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HiSilicon)이 설계한 모바일AP다. 화웨이는 전작(前作)인 메이트20, P30 시리즈에 역시 하이실리콘이 제작한 기린980을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 화웨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미국 퀄컴의 스냅드래곤을 모바일AP로 쓰고 있다. 삼성전자 또한 일부 제품에 자체 제작한 엑시노스 AP를 사용할 뿐, 스냅드래곤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산(産) 모바일AP 없이도 고사양 스마트폰 제조가 가능한 제조사는 사실상 화웨이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전자업계 일각에선 화웨이가 이번 HDC를 통해 미국 없이도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 후 중국 내 지배력을 도리어 높여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화웨이는 올 2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6%(판매량 3520만대)로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다.

제임스 얀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수출 제재 이후 화웨이는 중국 내 판매 촉진을 위해 인력을 늘리면서 판매망과의 관계를 더욱 확장했고, 단기적인 충격 이후 대부분 제품 공급이 정상화됐다"며 "스마트폰 서비스 및 애플리케이션 대부분을 중국 기업들이 제공하고 있어 중국의 소비자들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인해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