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계 日 수출규제 대응 긴급 토론회
"소재⋅부품 자립 생태계 키우는 中 배워야... 소재·장비업체 테스트베드 절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LCD(액정표시장치) 산업을 육성해 꼭 10년 만에 글로벌 1위에 올랐습니다. 이 성공적인 경험으로 이제 '제조2025'를 추진하고 있죠. 여기에 한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가 포함돼 있습니다. 중국은 완성품뿐만 아니라 소재·부품·장비 생태계도 함께 키우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 15% 불과한 반도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자급률을 2025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입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공학부 교수)은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한 과학기술계 대응방안'을 주제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공학한림원·한국공학기술한림원 등 과학기술계 3개 기관이 7일 오후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주최한 긴급 공동토론회에서 반도체 산업 생태계 육성을 강조하면서 후발주자인 중국에서 배울 것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회장은 "중국은 반도체 생태계를 함께 키우기 위해 국산화된 장비·재료를 중국 반도체 회사가 직접 사용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국산화 진행률에 따라 별도로 혜택(대출 이자율 우대·개발투자비 지원 등)을 주는 식으로 나서고 있다"면서 "한국 대기업과 정부도 이런 중국의 정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재 부품 국산화 생태계의 축으로 테스트 베드(성능 평가 팹) 구축 확대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회장은 "(한국)정부가 국내 기업의 테스트 베드(성능평가 팹)구축 확대를 위한 금전적, 제도적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도 "테스트베드를 통해 중소기업 소재·장비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이 결과에 따라 대기업이 의무적으로 사주는 '강제조항'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스트베드는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업체가 개발한 기술을 실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지 '성능을 점검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춘 공장'을 말한다. 정부가 초기 예산을 투입해 만들고, 업체들이 수수료를 내서 평가를 받는 식으로 운영된다. 현재 대부분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업체는 미국·유럽·일본 업체들과 달리 자체 테스트베드가 없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가 지난해 1~3월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사 44개, 장비사 22개 등 총 66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비공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도체 장비업체 중 29%는 아예 테스트베드가 없고, 테스트베드를 갖추고 있는 71% 중에서도 삼성·SK하이닉스에 적용할 수 있는 최신 장비로 점검 가능한 회사는 6%에 그쳤다. 반도체 소재·부품업체도 75%는 아예 테스트베드가 없고, 있더라도 그 용도가 한정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스트 베드 구축 등 반도체와 소재⋅부품 자립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박 회장은 "지난 10여년간 산업부의 반도체 분야 R&D 예산이 3분의 1로 줄어들면서 국산화율은 장비가 50%, 소재가 20%선을 못 벗어나고 있다"면서 "반도체 미세화공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재, 이에 기반한 부품·장비가 필요한 만큼 관련 R&D 예산이 늘어야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특히 "중국과 달리 한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이 대기업 영역이라는 이유로 관련 투자를 계속 줄여왔다"고 지적했다.
이현덕 원익IPS 대표는 "왜 국내 장비업체들이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가지 못했는가를 돌이켜 보면,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보다는 당장 비즈니스가 되는 기술 개발에만 매달려왔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중소기업의 R&D 예산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인 R&D 체계가 갖춰져야한다는 얘기다.
솔브레인의 박영수 부사장도 "정부가 지난 20년간 소재 국산화에 5조원을 쏟아부었지만, 모두 보편적인 소재,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소재 부문이었다"며 "일본처럼 기술적 난도가 높은 소재, 향후 지속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소재에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