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별로 없는데, 추나는 빼고 침이나 물리치료만 하면 안 되나요?"

"침, 추나, 부항, 물리치료 이렇게 세트로 1시간밖에 안 걸려요. 어차피 자동차보험회사가 치료비를 다 내줄 텐데 왜 굳이 안 하려고 해요? 이런 환자 별로 없는데…."

최근 서울 대방동 골목길에서 후진하던 앞차에 받힌 김모(28)씨는 한의원을 찾았다가 '세트 치료'를 권유받고 원하지도 않는 추나(推拿) 치료(손과 팔 등으로 하는 한방 물리치료)를 받았다. 엎드려 눕자 한의사가 목과 어깨를 꾹꾹 누르며 여러 차례 심호흡을 시켰다. 근육이 뭉쳐 있으니 꾸준히 치료받아야 한다고 했다. 걸린 시간은 6분가량. 김씨가 받은 '단순 추나' 시술비 2만2332원은 병원을 통해 전액 상대방 보험사에 청구됐다.

교통사고를 당해 수도권의 한 한방병원에 입원한 박모(38)씨도 다른 치료와 함께 하루 한 번씩 추나를 받고 있다. 시술 후에는 몸이 개운한 느낌도 들지만, 3~5분 시술 한 번에 2만~5만원인 추나를 제 돈 내고 받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 한방병원에 입원한 70여명의 환자 가운데 약 80%가 자동차보험에서 진료비가 나오는 교통사고 환자였고, 얘기를 나눈 환자 5명 모두 추나를 포함한 '세트 치료'를 받고 있었다.

'추나 폭탄'에 떨고 있는 보험업계

자동차 사고로 손해보험사가 지급한 진료비에서 한방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 23%에서 2018년 36%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올 들어 상반기까지 청구된 금액은 양방(洋方) 59%, 한방(韓方) 41%로, 한방 진료비가 처음으로 40%를 돌파했다. 양방 진료비는 2015년 1조1981억원에서 작년 1조2623억원으로 3년 새 5%(642억원)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한방 진료비는 같은 기간 3576억원에서 7139억원으로 거의 2배로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전국 한의원·한방병원 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 중 한의원·한방병원 비중은 2015년이나 2018년이나 15.7%로 변함이 없다. 그런데도 한방 진료비가 매년 약 1000억원씩 불어나는 이유가 뭘까.

보험사들은 교통사고 환자를 전문으로 하는 일부 한의원·한방병원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들이 경미한 사고에 대해서도 비교적 고가 진료인 추나요법을 포함해 첩약(한약)과 한방 물리치료, 약침 등을 '세트'로 묶어 진료하면서 전체 한방 진료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추나의 경우 작년 한 해에만 717억원이 청구돼 전년보다 1.5배 급증했다.

지난해 초 구로구에서 난 경미한 추돌 사고로 앞차 뒤차 모두 번호판만 살짝 긁혀 수리조차 하지 않았는데 조수석에 탔던 동승자(42)가 450만원 진료비를 청구한 사례도 있었다. 동승자는 목과 허리가 뻐근하다면서 대형 프랜차이즈 한방병원을 포함한 3곳의 한의원·한방병원에 다니기 시작, 총 69차례 진료를 받았다. 진료비 청구 내역에는 침술, 부항, 첩약, 한방 물리요법, 추나 등이 빠짐없이 포함돼 있었다. 정작 운전자(33)는 사흘간 병원에 다니며 진료비 7만원을 청구한 게 다였다.

이에 대해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양방 기준으로는 멀쩡해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몸이 망가진 환자가 적지 않기 때문에, 마치 한의사들이 경증 환자에게도 과잉 진료하는 듯 말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추나요법 시술 시간은 환자 상태, 의사 숙련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시술 시간이 짧다고 진료를 대충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한방 車보험 진료비, 3년 새 2배 급증

건강보험에 비해 자동차보험 진료 수가(酬價·서비스 가격) 기준이 허술하기 짝이 없어 일부 병·의원의 과잉 처방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부가 고시하는 건강보험 수가 기준은 특정 증상에 쓸 수 있는 약을 하루 용량 몇 ㎎, 상한 금액 얼마 등으로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있다. 상한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병·의원이 임의로 이 금액을 초과해 과잉 진료를 할 수 없다.

반면, 국토부가 고시하는 자동차보험 수가 기준에는 '환자의 증상 및 질병 정도에 따라 필요 적절하게 한방 첩약(1첩당 6690원)을 투여하여야 하며…'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돼 있다. 횟수나 용량, 상한선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병·의원들이 자동차보험 환자들을 대상으로 과잉 진료를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목 부위 인대가 늘어나거나 삔 환자에게 대부분의 한의사는 약침을 10번 이내로 놓지만, 104번이나 약침을 놓았다며 진료비를 청구한 경우도 있었다. 시술 횟수나 시술 기간 같은 최소한의 세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청구한 진료비가 과다한지 아닌지 사후적으로 심사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도 이런 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 기존에는 보험사, 의료기관, 공익대표로 구성된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가 사후 심사를 했지만, 2013년 7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이 기능이 위탁된 후 자동차보험 수가 세부 심사 기준이 사라져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