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가 온갖 대내외 악재에 신음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와 미·중 무역분쟁은 첨예한 정치적 갈등이 배경에 깔려있어 해소 시점을 예상하기 어렵다. 기업 실적 둔화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각국의 정치싸움 부담까지 떠안은 코스피지수는 결국 지난 2일 2000선을 내주고 말았다. 다급해진 투자자들은 청와대에 "시장 보호를 위해 잠시만이라도 공매도(空賣渡)를 금지해달라"는 호소문까지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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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갈등에 증시는 비관론 팽배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이달 2일 등록된 ‘한시적 공매도 금지’라는 제목의 청원글에는 지금까지 7560명(8월 5일 오전 2시 기준) 이상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 청원인은 "일본이 대한민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했고 북한은 연이어 포탄을 쏘아 올린다"며 "이런 시점에 공매도가 주가를 더 내려가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매도는 주가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사서 갚는 투자 방식이다. 공매도는 종종 주가와 역(逆)의 상관관계를 보여 소액 투자자 피해를 야기한다. 청원인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정부가 시그널을 줘야 한다"며 "단 3개월 만이라도 공매도를 금지해달라"고 적었다.

현재 코스닥시장의 대차거래 잔고(빌린 뒤 갚지 않은 주식)는 13억300만주(8월 2일 기준)로 역대 최다 수준을 기록 중이다. 대차 주식은 주로 공매도에 쓰인다. 이 물량이 증가한다는 건 그만큼 증시 전망을 어둡게 보고 공매도에 나서려는 이가 많다는 뜻이다.

반대로 증시 낙관론은 자취를 감췄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시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이달 1일 기준 9조2886억원이다. 이는 작년 11월 8일(9조2670억원)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일본이 경제 보복을 공식화한 7월 1일과 비교하면 10.4%(1조746억원) 급감했다. 신용거래융자는 개인투자자가 주식 매매 자금을 빌리는 것이다. 이 잔고가 감소했다는 건 증시 분위기가 얼어붙었다는 의미다.

한대훈 SK증권(001510)연구원은 "한·일 갈등이 격화되자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했고, 수출 규제에 대한 일본 내 지지여론(58%)도 반대여론(20%)을 앞서고 있다"며 "이미 분쟁이 정치적 이슈로 번져 장기화 우려가 크다"고 분석했다.

코스피지수가 7개월 만에 2000선 아래로 추락한 8월 2일 한국거래소 직원들이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증시 정보를 보고 있다.

◇부진 지속 전망…"배당·방어주 주목"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당분간은 높은 변동성 속에서 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예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반등하려면 트리거(방아쇠)가 필요한데, 아직은 트리거가 무엇일 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상황 개선을 위해선 재정과 통화 정책의 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코스피지수가 2000선 아래에서 장기간 머무를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많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003530)연구원은 "코스피 배당 수익률이 2.3%까지 높아졌고 10년 국채와의 수익률 격차는 1.0%포인트에 달한다"며 "주식을 팔아도 실익이 없는 수준까지 주가가 내려갔다"고 했다. 오현석 삼성증권(016360)리서치센터장은 "낮은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주가)을 확인한 기관의 대기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투자자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약세장에서는 낙폭이 상대적으로 작은 종목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표적인 것이 배당주다. 배당을 많이 하는 우량기업 주가는 시장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기 때문이다. 김대준 연구원은 "수익률 방어가 중요한 국면에서는 고배당과 순이익 상향 종목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해서는 민감도가 낮은 업종을 중심으로 투자전략을 짜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대훈 연구원은 "현 시점에서는 일본 대비 우위에 있는 섬유·의복 업종의 매력이 크다"고 분석했다. DB금융투자(016610)는 "강한 위기 방어력이 검증된 통신서비스·자동차·유틸리티 업종을 포트폴리오에 담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