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에게 '차고(車庫)'가 있다면 구광모에겐 '창고(倉庫)'가 있다. LG는 경기도 한 물류창고를 '테스트 베드(시험장)' 삼아 그룹 미래를 책임질 첨단 기술을 산업 현장에 적용하면서 담금질 중이다.
지난달 31일 찾은 경기도 안산 판토스 MTV센터는 바깥에서 봤을 땐 평범한 물류센터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 곳곳을 살펴보니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평소 강조했던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먹을거리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는 공간이었다.
MTV센터는 LG그룹 물류 계열사 판토스가 물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조성한 스마트 물류센터다. 연면적 8만8000㎡로 축구장 12개 규모다. 판토스는 MTV센터에 LG전자, LG유플러스, LG CNS 등 그룹 계열사와의 협업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개방형 혁신) 체계를 구축했다.
LG 계열사들은 각자 연구개발(R&D)로 확보한 기술을 물리적 공간인 판토스 MTV센터에서 실험해보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 MTV센터가 사실상 그룹 내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는 셈이다. LG 계열사들은 첨단 기술을 단순히 확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현장에 수시로 적용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기술 상용화 수준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판토스는 LG 계열사 기술력을 바탕으로 물류 경쟁력 강화를 노리고 있다. 물류 사업 경쟁 방식이 기존 '인프라'에서 '기술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 물류업계는 최첨단 기술이 격돌하는 최전선으로 부상한지 오래다. 아마존, 알리바바 등 글로벌 기업은 AI, IoT, 자율주행차, 드론 등 첨단 기술을 물류에 접목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 가트너 10대 전략기술 '디지털 트윈' 상용화에 박차…스마트시티 사업까지 확장
판토스 물류연구소는 MTV센터에서 AI, 빅데이터 등 다양한 신기술 접목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기술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를 가상화면으로 그대로 옮긴 뒤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험해보고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기술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디지털 트윈을 2019년 10대 전략기술 중 하나로 꼽고 있다.
판토스는 디지털 트윈 구상 단계부터 LG CNS와 손을 잡았다. 이미 디지털 트윈 기술을 가지고 있는 LG CNS는 실제 적용할 곳을 찾던 중 판토스와의 협업을 통해 물류 현장에 기술을 접목하기로 했다. 이날 판토스 물류센터 통합관제실에는 2D 스카다(SCADA‧원격감시제어) 시스템과 함께 3D로 구현된 디지털 트윈 모니터링 화면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녹색과 적색으로만 정보를 구분할 수 있는 스카다와 달리 디지털 트윈 은 개별 박스의 실시간 움직임은 물론이고 화주나 입고일 등 각종 정보가 표시됐다.
판토스는 디지털 트윈에 AI, 머신러닝 등을 접목해 활용도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트윈의 핵심은 사전 인지다. 현재 시스템이 크레인 고장 상태를 알려주는 수준이라면 앞으로는 기계 진동만으로 고장 가능성을 예측하고 사전에 알려주는 단계까지 기술력을 끌어 올린다는 것이다.
물류센터 디지털 트윈 적용은 계열사에도 도움이 됐다. LG CNS는 디지털 트윈을 물류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관련 기술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미래형 스마트시티 사업에서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 작업에 참여하기로 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 '지오펜싱'‧'스마트카트' 등 첨단 기술 줄줄이 도입 예고…최종목표는 완전 자동화
판토스는 가상 울타리를 뜻하는 '지오펜싱(Geo-Fencing)'도 연구 중이다. IoT, 위치기반시스템 등을 바탕으로 차량이 물류센터 반경 3㎞ 안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출고 제품을 분류해 바로 싣고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차량 도착 30분 전에 정시 도착 여부를 알아내 사전 조치할 수도 있다.
첨단 기술만 적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기존에 나온 기술이라도 물류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시 디자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게차 작업자가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헤드셋을 통해 각종 지시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음성 인식' 등은 이미 상용화된 기술이지만 물류 현장에 도입된 사례는 드물다. LG전자가 이마트와 함께 개발 중인 '스마트 카트 로봇'도 물류 현장에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LG 계열사들도 물류센터 내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다양한 기기를 테스트하고 있다. LG CNS는 오토 스토어(Auto Store), 피킹 로봇(Picking Robot), 스마트 소터(Smart Sorter), 스마트 갠트리(Smart Gantry) 등 각종 첨단 물류 장비를 센터 내 설치해놓고 시험 운용 중이다. 이 중 몇몇 기기는 LG생활건강, CJ대한통운, 롯데슈퍼, 이베이, 다이소, 쿠팡 등 국내 여러 물류현장에 도입된 상태다.
판토스 최종 목표는 스마트 물류센터 내 모든 공정을 무인화하는 것이다. 당장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보다 2~3년 이후를 목표로 다양한 기술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김기정 판토스 물류연구소 책임은 "LG그룹이 가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판토스의 물류 산업이라는 비즈니스를 통해 상용화 기반을 마련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체계를 구축했다"며 "판토스도 3자 물류를 확대하기 위해 개별 화주 특성에 맞는 물류기술을 확보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