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독사의 어금니를 닮은 여러 개의 구조물을 단 약물 패치(patch)를 개발했다. 파스처럼 붙이는 형태의 이 패치는 피부 아래로 고분자 약물을 15초 이내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주사 바늘 통증도 거의 없어 지금의 약물 투여 방식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독사 어금니 모사 약물전달패치를 확대한 모습.

배원규 숭실대학교 교수와 정훈의 울산과학기술원 연구팀은 1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트랜스레이셔널 메디슨(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독사의 어금니를 모사한 고분자 약물 전달 패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주사 바늘이 가져오는 공포와 통증을 기술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실린지 형태의 주사기가 독액이 나오는 구멍이 있는 독사 어금니를 보고 만들었다는 점을 착안해 여러 독사의 어금니를 관찰했다.

연구팀이 주목한 독사는 ‘뒷어금니뱀(Rear-fanged Snake)’이다. 일반 독사는 머리 내 압력기관을 통해 독액을 어금니의 구멍 밖으로 배출한다. 그러나 뒷어금니뱀은 압력기관 없이 어금니에서 독액을 내뿜는 특성을 가졌다.

외부 힘이 없이도 표면에 아주 미세한 홈이 있는 회전돌기형 어금니가 피부에 구멍을 내고 그 홈을 따라 독이 저절로 침투하는 것이다. 액체 속에 폭이 좁고 긴 관을 넣었을 때 관 내부의 액체가 외부로 이동해 관 속 액체 표면이 낮아지는 현상과 동일하다.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 어금니의 기능을 분석했다. 뒷어금니뱀의 어금니는 길이가 짧아도 압력없이 액체를 밀어 넣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마이크로 미터 크기로 이 어금니 구조를 모사한 주사를 만들면 약물 투여 시 통증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연구팀은 이 어금니를 모사한 구조체를 반도체 공정을 이용해 제작했다. 이 모사 구조체는 내부에 액상형 약물을 담았다. 또 모사 구조체의 크기가 작은 만큼 일정 투여량을 확보하기 위해 100여개를 패치 형태로 배열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패치는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다. 이 패치를 실험쥐와 기니피그에게 부착하자 외부에서 누르는 힘이 없어도 약물 성분이 전달됐다. 약물이 피부 밑으로 전달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5초에 불과했다.

배원규 교수는 "자연모사공학의 문제해결기법을 이용해 기존 실린지 주사기의 장점인 액체약물을 그대로 전달하면서도 큰 바늘과 높은 압력으로부터 기인하는 거부감이나 통증을 극복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실 제작된 독사 어금니 모사 약물전달패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