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금리인하 예고…보호무역 속 통화절하 유도 움직임
원화 예측 어려워…"환율 상승시 수출엔 득되나 자금유출 우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하를 앞두고 '환율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10년 7개월 만에 금리를 내려 통화정책이 완화적으로 전환되면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다른 통화들은 상대적 강세를 나타내게 된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중앙은행(BOJ) 등 주요국들도 통화 완화를 선언한 가운데 각국은 무역수지의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앞다퉈 환율 방어에 나설 공산이 크다.

한국의 경우엔 얘기가 좀 다르다. 펀더멘털(기초체력) 우려와 수출악재가 겹치면서 원화는 좀처럼 약세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한국은행도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 대열에 합류했다. 원화약세는 수출 경쟁력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에선 과도한 통화절하는 외국인의 자금유출을 부를 수 있어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2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자신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제롬 파월 당시 후보자를 지명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美금리인하, 달러약세 전환될까…ECB·日도 통화완화 선언

오는 30~31일(현지시간) 열릴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기정사실로 돼 있다. 미국의 금리인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던 2008년 12월 이후로 10년 7개월 만이다.

미국 금리인하는 달러가 약세로 전환될 계기가 될 수 있다. 통상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면 돈의 가치는 절하된다. 미국은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미·중 무역분쟁과 글로벌 경기둔화가 심화될 경우 충격을 피할 수 없다고 보고 '보험성 금리인하'를 단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환율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기둔화에 대응해 주요국이 금리를 내리면 자연히 달러는 강세를 보이게 되는데 이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 교역국의 통화 약세를 지적하는 동시에 달러 약세를 유도하는 발언을 지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금리인하는 달러 강세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요소"라며 "만약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연내 추가적인 금리인하를 시사할 경우 달러 약세 흐름을 가속할 수 있다"고 했다.

앞으로 주요국의 도미노 금리인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중앙은행(BOJ)은 30일 정책금리를 -0.1%로 동결했지만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할 것을 시사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9월 기준금리 인하를 강하게 예고한 상황이다. 달러 기축통화국 미국의 금리인하에 뒤를 이어 주요 국가가 금리를 내리면 이는 환율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이 경기침체까지 가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는 건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의도도 일부 반영됐다고 본다"며 "미국이 달러를 약세로 가져가게 되면 자동적으로 다른 나라들이 대응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글로벌 저금리·저성장과 보호무역주의가 지속되는 가운데 금리의 조정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정책금리가 상당히 낮아 통화정책이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성장 전망이 어둡고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는 금리인하가 소비·기업투자를 촉진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결국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통화 절하를 유도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의 금리가 낮아진 상황에서는 기준금리가 낮아진다고 해서 돈을 빌려 소비하고 투자하는 정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금리채널보다 환율채널이 더 중요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의 모습

◇경제체력 악화에 원화 '안갯속'…"수출·자금유출 모두 고려해야"

미국의 통화정책 전환을 앞두고 원화의 방향은 쉽게 예측하기가 어렵다.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자연히 비기축통화인 원화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를 보여야 하지만 현재는 장담할 수 없다. 원·달러 환율은 미 연준이 금리인하를 강하게 시사했던 지난달 19일 이후 미·중 합의 기대감까지 반영해 1150원대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상승세를 지속해 현재는 1180원을 웃돌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장세 둔화와 일본의 수출규제 등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원화의 약세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1분기 -0.4%(전기대비)의 경제성장률을 나타낸 데 이어 2분기 성장률도 1.1%로 1%를 겨우 넘어서는 선에 그쳤다. 또 일본은 지난 1일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한국으로의 수출을 규제했고 내달 중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할 예정이다. 또 한은은 경기부양을 위해 지난 18일 기준금리를 1.25%로 0.25%포인트 내렸다.

서정훈 KEB하나은행 연구원은 "미 연준의 금리인하 자체를 놓고보면 원화 강세의 요인이지만 주된 여건들이 그렇지 않다"며 "경기둔화가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일본의 수출규제가 성장세를 더욱 악화시키는 영향이 있어 원화 강세 정도는 약할 걸로 본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수출 여건을 생각하면 원화의 절하가 마냥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과도하게 절하될 경우 자금유출을 부를 수 있어 한동안 환율은 좁은 범위에서 움직이면서 적정선을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은 외환당국이 최근 들어 원·달러 환율이 1185원선을 넘어서는 경우에 개입 움직임을 보여 환율의 적정선을 1165~1185원으로 보고 있다. 외환당국은 미국의 금리인하를 두고 환율의 방향을 양쪽으로 다 열어두고 있는 상황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미 연준의 금리인하 가능성은 현재 환율에 일부 반영이 돼 있어 금리인하 자체로 달러약세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예상보다 긴축적일 경우엔 강세로 나타날 수도 있다"며 "환율의 특정 수준을 정해둔 것은 아니고 환율 정책은 대외변수, 수급에 의해 급격하게 시장 불안이 나타날 때 이를 방지하기 위해 쓸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