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중앙·지방재정 167조원 집행…글로벌 위기 후 최대
민간 경제활동은 오히려 역주행…하반기 경기급락 우려↑

한국은행이 25일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발표하자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소득주도성장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부가 나랏돈을 풀어 경제성장률을 1.3%P(포인트·전기비)나 끌어올렸지만, 투자 부진으로 위축된 민간 경제활동은 성장률을 오히려 0.2%P 까먹었다.

1분기 마이너스 성장(-0.4%)을 감안하면 2분기에는 강한 경기반등이 나타나야 했지만, 민간 부문 위축 때문에 성장률이 1.1%에 그쳤다. 1, 2분기를 포함한 상반기 성장률 1.9%(전년비)는 반기 성장률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아동수당·기초연금 확대 등 재정지출이 늘었음에도, 생산·투자 등 민간 경제활동은 살아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랏돈에 의존한 소득주도성장으로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 어렵다는 게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경기회복을 위해 상반기에만 전체 사업 예산의 65%를 사용하면서 하반기에는 재정절벽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민간 경제활동이 살아나지 못한 채 재정절벽으로 지출이 급감하면 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 5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왼쪽 네 번째)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그는 이날 회의에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2분기에만 재정 167조 이상 투입, 민간 경제 활력은 ‘마이너스’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사업예산 집행액은 190조7000억원으로 전체 사업예산(291조9000억원)의 65.4%가 집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지방자치단체가 집행하는 지방재정은 6월말 현재 전체 사업예산(199조1000억원) 중 60.8%인 121조1000억원이 집행됐다.

지난 3월말 집계된 1분기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업예산 집행액이 각각 94조4000억원, 50조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분기에 각각 96조3000억원, 71조1000억원이 집행돼 총 167조4000억원이 시중에 뿌려진 것이다. 분기 기준 중앙·지방재정 집행액으로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로 파악된다. 2분기 GDP 총액(421조원 가량)의 40% 가량이 정부 재정에서 파생된 셈이다.

이렇게 집행된 정부 사업예산은 상당 부분이 정부 소비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2분기 정부소비는 전기대비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성장률의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정부 소비가 증가한 것이다. 이는 올해 중앙 정부 예산의 65.4%가 상반기에 풀린 것과 관계가 깊다.

정부투자로 집계되는 SOC(사회간접자본) 건설은 자금 집행 일정을 조정하기 어렵지만, 각 부처가 사업을 벌여 물품을 사들이고 용역을 맡기는 행위는 상대적으로 일정을 바꾸기 쉽다. 그만큼 정부 소비가 가파르게 늘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2분기 성장률 1.1%에 대한 정부 소비 기여도는 0.4%P에 이른다. 또 정부 재정에서 나오지만 각종 복지수당으로 민간으로 이전되는 몫이 늘면서 민간소비 성장기여도가 0.3%P에 달했다.

문제는 정부 소비가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집행됐음에도 민간의 경제 활력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 소비는 지난해 4분기에 전분기 대비 2.8% 늘어나는 것을 시작으로 9개월 동안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8년 4분기~2019년 2분기의 분기별 평균 정부소비 증가율은 1.9%에 달한다. 1분기 증가율이 0.4%에 그쳤지만, 지출액으로 따지면 크게 늘었다. 정책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9개월가량 이렇게 정부 소비가 늘어났을 경우 어느 정도 민간 수요를 자극해야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2분기 GDP 성장 기여도는 이와 반대로 흘러갔다. 민간투자에 해당하는 민간 부문의 총고정자본형성은 성장률을 0.5%P 끌어내렸다. 순수출도 성장률을 0.1%P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간투자와 수출이 0.6%P 만큼 성장률을 낮춘 것이다. 민간 소비가 증가했음에도 민간 부문이 성장률을 0.2%P 끌어내린 건 투자·자본축적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전기비 GDP 성장률, 정부소비 및 민간 성장 기여도(단위 : %, %P, 한국은행)

◇ "정부소비 의존한 성장은 일시적"…하반기 재정절벽 우려 커져

전문가들은 정부 소비의 성장 기여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진단한다. 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정부 예산은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민간의 투자·소비가 성장을 이끌어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 22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2분기 경제성장률이 1%를 넘어도 경기가 어렵다고 봐야 한다"면서 "핵심은 민간의 회복세이기 때문에 이 부문을 유의해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정부 소비의 성장기여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4년~2017년 1분기까지 0.1~0.2%P 수준이었던 정부 소비의 성장 기여도는 현 정부 출범 후인 2017년 2분기 이후 0.2~0.5%P로 확대되는 추세다. 일반적으로 정부 소비의 성장 기여도가 높아지는 것은 민간 경제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됐을 때 나타나는 징후로 읽힌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외부적인 충격 등으로 경기가 갑자기 꺾일 때는 정부 소비가 경기악화를 완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정부소비 성장 기여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최근에는 민간 기여도가 낮아지면서 정부 소비 기여도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소비에 의존한 성장은 재정절벽에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상반기 정부 소비가 성장을 견인한 것은 나중에 쓸 예산을 미리 앞당겨 쓰는 재정 조기집행에 힘입은 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용 가능한 예산이 줄어드는 연말로 갈수록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될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올해의 경우 전체 491조원인 중앙·지방재정 중 311조원을 상반기에 집행했기 때문에 하반기에 쓸 수 있는 재정은 180조원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4~6월 3개월 동안 썼던 규모와 비슷한 돈을 올해 중 남아있는 6개월 동안 나눠 써야 할 형편이다. 이 때문에 오는 3, 4분기 말에는 재정 지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민간 경제 연구원 관계자는 "일본 수출 규제 등으로 하반기에도 민간 경제활동의 회복을 기대할 수 없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재정지출 효과가 급격히 반감되면 올해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