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 BRV캐피털매니지먼트 대표 인터뷰
페이팔 첫 번째 기관투자자… 웨이즈·모구지에·SSG닷컴에 투자
한국은 압박에 강해… 일본 수출 규제, 미·중 분쟁 정면돌파 하면 기회

"한국은 중국, 일본에 비해 중립적이고 압박에 정말 강합니다.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이 분쟁하고 일본이 압박할 때 더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습니다."

윤관 BRV캐피털매니지먼트(이하 BRV) 대표는 지난 17일 서울 중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 대안론'을 화두로 던졌다. 과도한 반부패 운동,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성장이 둔화한 중국을 대신해 한국에서 혁신 기업과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지난 2분기 중국은 분기 최저 수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보고했다. 민간 부문에서 돈이 안 돈다"며 "한국은 중국에 비해 시장 규모는 작지만, 내수 시장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한 후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이 가능하다"고 했다.

윤관 BRV캐피털매니지먼트 대표.

실제로 BRV는 스타트업, 대기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한국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올해 3월 신세계그룹 온라인 쇼핑 회사 SSG닷컴에 3500억원을 투자해 주목을 받았고, 특수 가스 전문업체인 대성산업가스, 전기차 배터리 기술 기업인 에코프로GEM, 부동산 스타트업 직방에도 투자했다. 대기업도 혁신이 필요할 경우 과감한 분사를 추진하는 등 전략적으로 기존의 틀을 깰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신세계그룹 온라인몰 3곳을 묶어 SSG닷컴으로 분사한 게 대표적인 예다.

윤 대표는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투자 대상을 미리 정하지 않고 조성하는 펀드)를 만들고 있다"며 "한국이 이스라엘처럼 내수 시장을 벗어나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을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BRV의 노하우,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내 기업과 도전의 최전선에 서겠다"고 했다.

윤 대표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BRV의 모회사 블루런벤처스에서 20년가량 제너럴 파트너로 활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블루런벤처스는 특히 미국 핀테크 업체 페이팔(PayPal)에 투자한 첫 번째 기관투자자로 유명하다. 구글에 인수(인수가 14억달러, 약 1조6500억원)된 이스라엘 스타트업 웨이즈(Waze)에 투자해 큰 수익을 냈으며 중국 최대 뷰티 이커머스 플랫폼 모구지에, 핀테크 기업 취뎬(趣店·Qudian)을 발굴해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으로 키워내기도 했다.

◇단기 재무성과보단 시장 확장 가능성 따져 투자

-실리콘밸리 IT 기업부터 최근 SSG닷컴까지 다양한 업체에 투자했다. BRV만의 특별한 투자 원칙이나 기준이 있나.

"우리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장기적 시각에서 투자를 집행한다. 블루런벤처스는 1998년 당시 휴대폰 시장 40%를 점유했던 노키아 그룹이 출자한 자금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실리콘밸리, 유럽, 이스라엘, 중국, 인도, 한국 등 다양한 지역의 혁신 기업에 투자하며 사업 모델 확장, 전략 실행 등을 도왔다.

단기 재무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혁신을 만드는 창업자와 경영진의 역량, 열정을 심도 있게 들여다본다. 20년 이상 축적해온 산업과 기술에 대한 통찰력을 기반으로 시장 확장 가능성, 타이밍 등을 따져서 투자한다고 보면 된다. 페이팔의 경우 현재 기업가치 120조원 이상의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투자로 초석을 쌓았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기억에 남는 투자 성공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웨이즈의 경우, 모바일 지도 데이터를 사용자 기반으로 생성·업데이트하는 다이내믹 매핑(dynamic mapping) 기술이 획기적이라고 봤다. 기술 기반의 작은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글로벌 확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고 새로운 경영진을 구축했다. 쉽지 않은 숙제였으나 회사의 독보적인 기술과 빠른 글로벌 확장성을 인정받아 구글에 성공적으로 매각됐다. 웨이즈는 지금도 구글 맵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웨이즈는 BRV 투자 후 구글에 성공적으로 매각됐다.

직방의 경우 창업자인 안성우 대표가 BRV 한국 오피스 초창기 투자팀 멤버였다. 창업 당시 가지고 있던 소셜커머스 사업 모델에 우리가 시드(seed) 투자해 탄생한 회사다. 안 대표의 뛰어난 사업적 감각, 분석력, 통찰력, 리더십을 높게 평가했다. 직방은 시장 변화에 맞춰 유연하고 속도감 있게 사업 모델을 혁신하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실패 사례는.

"이 일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여러 실패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중에도 가장 아쉬움이 남는 투자 건은 '춘위이성(春雨医生)'이라는 중국 기업이다. 1억 명의 환자와 백만 명이 넘는 의사를 모바일 플랫폼으로 연결해 원격 진료 환경을 만들던 회사인데, 창업자가 갑자기 암으로 사망해 직원 동요가 발생했다. 2대 주주인 BRV가 노력을 기울여 새로운 경영진을 구축하고 사업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에 성장 동력을 잃었다."

◇공유경제, 생명과학, 커넥티드카 등에 관심… 내수 시장 벗어나야

-벤처캐피털 업계에 어떻게 입문했는지 궁금하다.

"잘 할 수 있는 게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니 분석력, 지구력, 관찰력, 커뮤니케이션 정도였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창의력을 보유한 분들을 모시고 내 장점과 열정을 살려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야가 성장투자라고 생각했다. 이 일에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최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기술 분야나 기업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사회경제적 변화, 기술 발전이 접목돼 개인화가 활발하다. 소위 혼밥, 혼술 등이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고, 뷰티, 광고, 헬스케어 등 다양한 제품∙서비스 분야에서 개인 맞춤형 전략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자동차, 전자제품 등 다양한 소비재가 '공유'라는 큰 개념 하에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고, 향후 5-10년간 기업과 투자회사에 큰 기회와 위협으로 다가올 것으로 본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기반 소프트웨어, 반도체, 센서 기술의 발달로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 시점이다. 콘텐츠 시장 역시 산업의 수익 구조 자체가 새롭게 구축되고 있다. 5G(5세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서비스, 커넥티드카 시장의 비약적 팽창도 기대하고 있다."

블루런벤처스가 투자한 회사들.

-실리콘밸리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한국 기업은 내수 시장 점유율에 집중하는 틀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세계화로 모든 시장이 끊임없이 연결되는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경쟁사보다 우위를 확보하려면 대기업, 벤처∙중소기업 할 것 없이 전략적 합병이나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정부와 유관기관의 탄력적인 지원, 자본시장과의 긴밀한 협업, 글로벌 시장 접근성, 교육환경 변화 등도 중요하다. 실리콘밸리도 오랜 기간 동안 끊임없는 변화와 도전을 거쳐 지금의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 적극적 인수합병·위기 의식 필요… '기업 한류' 기대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국 기업들이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돌파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큰 그림으로 얘기하면 영화 '어벤져스(Avengers)'에 답이 있지 않을까. 개별 기업은 각자의 핵심 영역에서 차별화된 역량을 기술적, 사업적 관점에서 확고하게 끌어올려야 한다. 그리고 산업 내·외부와의 인수합병, 자산매각, 신기술 도입 등 적극적인 전략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면 더욱 강한 대한민국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의 위기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근무시간 제한 등 어려운 점이 있다고 알고 있다. 중국의 경우 치열하게 경쟁하는 회사들은 금요일 밤에도 개발자들이 늦게까지 일한다. 글로벌 경쟁 시대이기 때문에 긴장감을 가질 필요는 있다.

과거 화웨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는데, 직원들이 노키아 빌딩 앞에 죽치고 앉아서 사람 빼가려고 하더라. 통신사에 리베이트 주면서 노키아에서 누가 일 잘하는지 5명만 꼽아달라고까지 했다. 누가 잘하는지 찾아내면 월급 2~3배 주고 데려오고 하면서 기술 수준을 끌어올렸다. 그 정도로 절박하고 경쟁이 치열한 게 현실이다."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페이팔 출신 창업가·투자가들.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앞줄 왼쪽), 맥스 레브친(앞줄 오른쪽)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목표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빌더(Builder)'가 목표다.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헤븐빌더(Heaven builder)'로 성장하고 싶다. 다른 이들이 하지 않는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계획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더 아름답고 값진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훌륭한 기업가와 인재를 모시고 페이팔 같은 글로벌 브랜드를 만들어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싶다."

-기업 경영자나 예비 창업가를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한국은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혁신 시장이다. 벤처 분야에서도 많은 사례가 나타나겠지만,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SSG닷컴으로 제2의 창업을 주도하고 있다.

혁신을 위해선 본질적으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본다. 장기 목표에 맞춰 업의 본질과 인재 육성에 집중해야 성공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선 페이팔 출신 임직원을 '페이팔 마피아'라고 부른다. 이들이 테슬라, 유튜브, 링크트인, 옐프 등 무수한 혁신 기업을 연쇄적으로 창업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기업 한류'를 확산하는 새로운 마피아가 나타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