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커진다고 호랑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난 23일 LG디스플레이 2019년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는 한국 속담이 등장했습니다. 김창한 LG디스플레이 상무(TV마케팅담당)가 '삼성전자가 북미에서 공격적인 QLED TV 가격 정책을 펼쳐 LG디스플레이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는 투자자 질문에 답변하면서 인용한 것입니다.
김 상무는 '고양이'와 '호랑이'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속담을 인용하기 앞서 "QD(퀀텀닷)를 사용한 LCD(액정표시장치) TV 가격이 내려가도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에 끼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삼성전자의 'QLED'를 'LCD TV'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LCD인 삼성전자 TV는 '고양이'고, LG디스플레이의 OLED는 '호랑이'"라는 속내를 드러낸 겁니다.
LG와 삼성이 TV 기술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 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2017년 QLED·OLED TV를 처음 내놓은 뒤 한 회사가 경쟁사를 언급하면, 경쟁사가 반격에 나섰습니다.
2017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선 당시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을 이끌었던 윤부근 부회장이 퀀텀닷 기술을 소개하며 "경쟁사 제품이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필터로 정수한 물이라면, 우리는 물 자체가 순수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스스로 빛을 내는 OLED를 LCD 기반인 QLED와 일대일로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올 들어서도 LG는 삼성 QLED TV에 대한 평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부회장은 올 2월 열린 디스플레이 기술설명회에서 "자발광 퀀텀닷을 활용해야 진정한 QLED"라며 "경쟁사(삼성전자)가 말하는 QLED는 퀀텀닷을 이용한 LCD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권봉석 LG전자 MC(모바일)·HE(TV)사업본부장(사장)은 올 3월 TV 신제품 발표행사에서 "QLED와 OLED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은 LCD와 OLED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과 같다"고 했습니다. 올 5월에는 박근직 LG전자 상무(HE생산담당)가 "QLED TV는 옛 SUHD TV에서 이름만 바꾼 제품"이라며 "QLED TV 판매량은 증가한 적이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계속되는 LG의 '신경전'에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LG와 삼성이 TV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상대에 대한 감정이나 평가를 드러내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가전업계에선 'LG가 삼성에 쌓인게 많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TV를 놓고 두 회사가 벌인 신경전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개발팀장(전무)이었던 김현석 현 삼성전자 CE부문장(사장)은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현 LG그룹 부회장)이 패시브 방식도 풀HD라고 했는데, 밑에 있는 엔지니어들이 정말 멍청한 XX들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법적대응을 불사하겠다며 삼성전자에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태는 공식 사과로 일단락됐지만, 당시의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분석입니다.
LG가 삼성의 마케팅 전략에 휘둘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과거 액정 뒤에서 빛을 비춰주는 광원으로 LED(발광다이오드)를 사용하는 LCD TV를 'LED TV'로 이름붙여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QLED라는 명칭도 비슷한 전략입니다. 소자에 QD를 사용하고 광원이 LED이니 QLED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과거 삼성의 LED TV 마케팅으로 타격을 입었던 LG 입장에선 OLED와 비슷한 QLED라는 이름이 노이로제일 것"이라며 "LG가 OLED TV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