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8년만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 재수사 발표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 재판 선다
'구상권 청구' 애경산업 고위직도 구속기소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애경산업, 이마트 등 유통기업이 긴장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제조한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 등 8명이 구속되고 26명이 불구속기소 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올해 초부터 수사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결과를 23일 발표했다. 2011년 4~5월 출산 전후 산모 4명이 폐질환으로 입원했다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지 8년 만이다. 2016년 진행됐던 1차 수사(21명 기소)에 이어 2차 수사에서 34명이 기소됐다.
애경산업(018250)은 그간 "제조가 아닌 유통에만 관여했다"고 주장해왔지만, 검찰이 고광현(62) 전 대표와 그룹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던 양성진(55)전 전무를 구속기소하면서 난감해졌다. 두 사람은 본사·중앙연구소 직원 55명의 PC 하드를 교체하고 이메일과 '파란하늘 맑은가습기' 자료,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 등을 인멸하거나 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애경산업은 앞서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 메이트'에 이름만 붙여 판매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난 4월 제조사인 SK케미칼을 상대로 7억원대 구상금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두 기업 간 판매계약서에 "SK케미칼이 제공한 상품 원액의 결함으로 인해 제3자의 생명, 신체에 손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SK케미칼이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며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는 주장이다.
애경산업이 가습기 메이트로 벌어들인 연매출은 5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위험부담은 커지고 있다. 검찰은 애경산업이 조직적 증거은폐와 제조에 관여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있다. 1997년 애경산업이 자체 제조 판매했던 '파란하늘 맑은 가습기'의 안정성 의혹도 남아있는 상태다. 검찰은 구속기소한 두사람 외에 안용찬(60) 전 애경산업 대표 등 5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총무 채권 팀장을 증거인멸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공정위 과징금을 피했던 이마트(139480)도 검찰 조사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마트는 앞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700만원을 부과받자 행정소송을 냈고 '처분 시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취소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본부장과 상무, 상무보가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2006년부터 독성 화학물질이 있는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제품 때문에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마트(3명), 애경산업(8명) 외에도 SK케미칼 관계자 14명과 법인 2곳이 재판에 넘겨졌다. 필러물산(2명), GS리테일(2명)·퓨앤코(1명) 직원, 환경부 직원(1명), 국회의원 보좌관(1명) 등도 기소됐다.
이번에 조사대상이 된 기업들은 그간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해왔지만 재수사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두 원료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의 역학조사 결과가 축적되고,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관련 연구자료를 검찰에 냈기 때문이다.
한편 가습기 사건 수사가 길어지면서 1차 조사에서 유죄를 받았던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유통사 관계자들은 형을 마치거나, 만기 출소를 기다리고 있다. 금고 3년의 실형을 받았던 노병용 전 롯데마트 대표는 지난달 만기 출소했고, 김원회 전 홈플러스 그로서리매입본부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내년 출소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