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손에 쥔 돈이 5%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소득이 역(逆)성장한 것은 글로벌 IT 경기 부진과 원화 강세 등으로 기업 실적이 부진했던 2005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 기업소득(조정처분가능소득 기준)은 404조4900억원으로 전년(426조9228억원)보다 22조4328억원(5.25%) 줄었다. 이는 우리나라 모든 기업이 임금·세금 등을 떼고 나서 손에 쥐는 당기순이익을 합한 개념이다. 기업들은 이렇게 남긴 돈을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등에 쓴다. 작년에 우리 경제가 2.7%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경제의 몸집은 커졌지만 성장 동력 역할을 해야 하는 기업들의 소득은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는 소득 주도 성장을 추진하면서 기업들이 역풍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작년에 일자리가 글로벌 금융 위기(-8만7000명) 이후 최저인 9만7000개밖에 늘어나지 않는 '고용 쇼크'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은 데다 하반기엔 글로벌 반도체 경기 하락까지 겹쳤다. 여기에 더해 작년 평균 임금 상승률이 5.3%로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급증한 탓이란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주체인 기업들의 상황이 나빠지는 걸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된다"고 했다. 반면 정부 소득(301조9922억원)은 전년보다 10.5%나 불어났다. 가계소득도 1184조2972억원으로 전년보다 4.2% 증가했다.

기업소득이 크게 줄어들면서 전체 국민소득 중에서 기업이 가져가는 몫도 줄었다. 작년에 국민소득 중 기업 몫의 비중은 21.4%로 2010년 이후 최저였다. 반대로 정부가 세금 등으로 가져간 몫은 16%로 2010년 이후 가장 컸다. 가계 몫은 62.6%로 전년(61.9%)보다 소폭 커졌다.

정부 몫이 늘어난 것은 실제 작년 정부의 세수가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세와 지방세를 합한 총세입은 377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9.3% 늘었다. 조세부담률(총세입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값)은 21.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작년 정부가 기업에서 가져간 법인세는 70조9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9.9% 급증했다. 당초 정부 예상보다 7조9000억원(12.5%) 더 많이 거둬간 것이다. 정부가 과세표준 3000억원 이상 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작년에 22%에서 25%로 올린 점 등이 반영된 결과다. 과거엔 기업이 가져갈 몫을 정부가 가져간 것이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 등에 따른 인건비 증가도 기업이 가져가는 몫이 줄어드는 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노동소득분배율(기업이 벌어들인 돈에서 근로자가 가져가는 몫)은 63.8%로 전년보다 1.8%포인트 증가했다. 기업의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인 영업 잉여는 줄어드는 가운데, 근로자 등에게 지불하는 피용자 보수는 전년 대비 5%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문제는 올해 기업들의 실적이 작년보다 더 나쁘다는 전망이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체 상장 기업의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7% 급감했다. 2분기 이후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은 글로벌 반도체 불황 등으로 인해 지난해 12월부터 8개월 연속으로 감소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작년에는 그나마 반도체 호황 등이 우리나라 경제를 먹여 살렸는데, 올해는 반도체 경기가 꺾인 데다 (미·중 무역 분쟁과 일본 수출 규제 등) 대외 여건도 악화했다"며 "올해는 기업들의 상황이 더 나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