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성장률 1%내외 부진 지속…하반기 회복 어려울 듯
"디플레·생산성 부진 이어지면 일본형 장기침체 불가피"
한국은행은 18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발표한 '2019년 7월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로 예상했다. 4월 전망치(2.5%)보다 0.3%포인트(P) 낮춘 것이다.
한은의 전망은 경기흐름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2017년 2~3분기부터 완만하고 느린 침체 국면을 걷고 있던 국내 경기가 올 상반기를 기점으로 '급격한 하강'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경기는 글로벌 경기순환과 발맞춰 호황기에는 과잉투자가 경기회복을 주도하고 불황기에는 구조조정으로 과잉 생산이 정리되는 흐름이었지만, 최근 2년 간 흐름은 이런 선순환을 찾아볼 수 없다. 주력 제조업 다수가 어려움을 겪고 경제 전체의 생산성 개선이 둔화된 상황에서, 가계와 기업의 총수요도 장기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장기 경기침체의 전조'를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IMF 직전보다 '경기 하강' 기간 더 길다
18일 한은이 발표한 경제분석보고서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상반기 1.9%(전년동기 대비), 하반기 2.4%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분기별 GDP 성장률은 지난해 3분기 0.5%(직전 분기 대비), 4분기 0.9%를 기록한 뒤 올 1분기와 -0.4%(전년 동기 대비 1.7%)를 기록했다. 정부는 마이너스 성장을 한 국내 경기가 2분기부터 빠른 회복을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2분기 성장률은 기껏해야 1%내외(전년비 2.1%) 수준일 것으로 예측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한은이 전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반등할 것으로 기대했던 2분기 성장률이 부진했기 때문"이라며 "당초 예상된 '상저하고(上底下高)' 대신 하반기까지 부진이 이어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경기 둔화의 양상이다. 최근 거시 경제 여건은 2016~2017년 상반기까지 짧고 완만한 경기 회복 이후 2017년 하반기부터 느리게 가라앉던 상황이었다. 설비투자 동향은 이를 잘 보여준다. 2017년 1~3분기 전년 동기 대비 17.4~19.2% 늘어났던 설비투자 증가율은 2017년 4분기~2018년 1분기 10.2~10.4%로 내려간 이후, 2018년 2분기부터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2018년에는 반도체, 석유화학 등의 수출이 호조를 보인 것이 경기 둔화 폭을 줄였다.
그런데 지난 1분기부터 반도체 업황 부진, 석유제품 및 석유화학 제품 생산 둔화가 이어지면서 경기는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제조업 생산지수는 지난해 3분기 107.8(계절조정 기준)을 기록한 이후 올 1분기 103.1, 4~5월 104.3으로 내려갔다.
올 하반기까지 경기가 계속 둔화될 경우 통계 작성 이래 가장 긴 경기 하강이 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은 1972년부터 경기 흐름을 분석하고 있는 데,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2월부터 1998년 8월까지 30개월 동안 이어진 경기 하강이 최장이었다. 통계청은 2017년 2~3분기를 경기정점으로 보고 있다. 그 해 6월 정도를 경기하강 시작월로 삼으면 지금까지 26개월째 '내리막'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한은 경제전망대로 라면 올해 말까지 경기 하강이 계속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 경우 30개월을 넘기게 된다.
◇총수요 부진·디플레 '이력효과' 우려 커
두 번째 문제는 현재 경기 침체가 수요 둔화로 인한 디플레이션과 결합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은은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7%로 4월(1.1%)보다 0.4%P 하향조정했다.
특히 하반기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1.4%에서 0.7%로 0.7%P 낮췄다. 올해 근원인플레이션율(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지수) 전망치도 당초 1.2%에서 0.8%로 0.4%P 내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를 기록하는 것은 2015년(0.7%) 이후 처음이다. 또 0%대 근원인플레이션율은 사상 최초다. 그만큼 올해 민간 수요가 극히 부진하다는 의미다. 2015년의 경우 유가 및 원자재 가격 급락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한은의 전망은 올해 한국경제가 극심한 민간 수요 부진을 겪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5월 '2019년 상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경제 전체의 물가상승률인 GDP디플레이터(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가 올해 -0.2~0.4%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KDI는 당시 "총수요압력 증감율이 평균 -0.6%일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수요가 줄어들면서 물가를 끌어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총수요(aggregate demand·가계·기업·정부 등 경제 전체의 수요) 부진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내지는 디스인플레이션(만성적 저물가)는 일본이 198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 동안 겪었던 현상이다.
이 경우 경제의 기초 체력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이력효과(hysteresis)'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원래 이력효과는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오랫동안 취업을 하지 못할 경우 이전에 갖고 있던 숙련도가 사라지고, 건강 등이 악화돼 만성적인 실업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서 출발했다. 거시 경제로 영역을 넓히면, 불황 장기화로 노동력의 질이 나빠지고 공급이 줄어 기술 혁신이 지체되면서 결과적으로 잠재 GDP 성장률이 더욱 낮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생산성' 하락
지금까지 한국의 경기 순환은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와 글로벌 경기 순환에 기인한 것이었다. 완만하게 경기가 좋아지다가, 기업 부실이 한번에 터지면서 급랭(急冷) 국면에 돌입했던 이유다. 통계청에 다르면 1972~2011년까지 10차례의 경기순환에서 '상승'은 평균 31개월, '하강'은 평균 18.2개월간 지속됐다.
2017년 하반기 시작된 지금의 불황이 이전 경기침체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과잉 투자'가 아니라 '생산성 정체'가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등 이전의 주력 산업이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현배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몇 년 간 제조업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생산성 하락 문제는 제조업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설비투자 급락도 결국 생산성 하락에 기인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KDI는 "물적자본(투자)의 성장기여도 둔화는 총요소생산성의 증가세 둔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기업의 투자 기피가 아닌, 산업 경쟁력 악화 등 생산성 저하가 투자 감소를 이끈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2017~2018년 설비투자 증가가 대부분 반도체와 OLED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나왔는데, 이는 다른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해서가 아니라 그나마 IT(정보기술) 부문 기업들만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침체 구간이 긴 U자형 내지 L자형 장기 불황 국면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한국의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글로벌 경제가 되살아나던 2014~2016년 사이에 경기가 회복되지 못한 게 문제"라며 "당시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기초 체력이 더 안좋아졌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다 글로벌 경제가 주춤해지자 기초 체력이 약해진 한국 경제가 다시 몸살을 앓기 시작한 것"이라며 "만성적 저투자의 악순환을 앓게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