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실리콘밸리에선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위해 450여개 기업이 참여한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와 만나지 않은 기업이 있다면 지금 바로 제게 찾아오세요."(자율주행 설루션 세계 1위 '엔비디아' 이사)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은 실리콘밸리에 오셔야 합니다. 기술의 첨단에서 '개방형 혁신'에 함께해야 새 기회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자율주행 개발 스타트업 '아이리스' 창업자)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코트라(KOTRA) 주최로 열린 '한-미 오토테크 커넥트' 행사에선 실리콘밸리에서 자율주행차·전기차 관련 사업을 벌이고 있는 20개 업체가 참여해 미래 자동차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 방안을 제안했다. 그들은 우리 기업에 '글로벌 무대로 나와 함께 일하자'고 손짓했다. 세계적 제조 기술을 갖고 있지만, 미래 자동차 산업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하는 국내 부품업체도 63곳이 모여 미래차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이날 행사는 한국 기업과 협력하고자 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수요와, 해외로 진출해 새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국내 부품업계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열렸다. 실리콘밸리에선 기업 창업자부터 구매를 담당하는 임원, 수석연구원이나 팀장 등 실무진까지 다양한 멤버 구성으로 한국을 찾았다.
◇미래 자동차는 '바퀴 달린 컴퓨터'
미래 자동차는 어떤 모습일까.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콘퍼런스 무대에서 '미래차는 바퀴 달린 컴퓨터'라고 입을 모았다. 대니 샤피로 엔비디아 모빌리티 총괄 이사는 "자율주행 기술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며, 이를 처리하는 각종 컴퓨터 부품이 차에 들어간다"며 이렇게 말했다. 엔비디아는 자율주행 설루션 기술 세계 1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테슬라와 함께 전기차 시대를 연 기업으로 평가받는 패러데이 퓨처의 공동창업자인 토니 니는 "요새 전기차는 배터리, 모터, 공조장치, 운영체제, 통신장치 등 5개 분야 부품이 각각 모듈화되고 있다"며 "기존엔 없던 차 부품에 대한 새 수요가 생기면서 부품 산업이 앞으로 계속 확장해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중국에서 AIKAR라고 하는 전기차 플랫폼 회사를 새로 창업했다. 전기 픽업트럭을 만든 리비안의 구매총괄을 맡고 있는 올란도 레예스 이사는 "무선충전·연료전지 등 다양한 미래차 기술은 이미 다 개발돼 나와 있는 상황"이라며 "이젠 기술 개발이 아닌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기차·자율주행차는 머지않아 시장을 지배할 예정이다. 시장조사업체들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560만 대 수준인 전 세계 전기차 시장 규모는 2025년 2480만 대로 5배 가까이 커질 전망이다. 자율주행차 누적 판매량은 2030년쯤엔 9100만 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부품사 매력적"
콘퍼런스 이후 열린 수출 간담회에선 부스마다 수십 건의 1대1 수출 상담이 이어졌다. 미국 업체가 "자율주행을 위한 레이더가 필요하다. 이런 스펙에 맞춰줄 수 있느냐"고 물으면, 한국 업체들은 "이런 방법으로 제작하면 가격은 낮추고, 안정성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코트라 관계자는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한국 부품사들과 협력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지난 40~50여년간 국내 완성차 업계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면서, 특정 부품의 매출과 순익을 계산하고, 실제 공급까지 해내는 등 제조업 업력을 쌓아온 경험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카메라 센서를 개발 중인 넥사의 케이트 밸린짓 총괄 매니저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제조업의 어려움을 잘 모른다"며 "스타트업들은 일을 빠르게만 하려고 하는데 사실 공급망 유지는 일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구글과 넥사는 각자 자사가 개발한 자율주행 시스템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파트너 기업을 찾고 있었다. 내년부터 전기차 양산에 돌입할 중국 전기차 업체 바이튼의 스캇 방 수석엔지니어는 "첨단 기술 기업과 부품 개발부터 함께하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얻게 될 것"이라며 "부디 세계무대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말라"고 전했다.
◇고난의 길이지만, 큰물에서 놀아야
과거 완성차 업체는 물류비용 등을 감안해 공장 인근 부품사로부터 납품을 받았다. 그러나 전기차 시대엔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부품을 공급받아야 한다. 경쟁이 심화하면서 최첨단 기술을 쓰지 않고선 살아남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부품사들도 이젠 보다 과감히 해외 시장을 두드려야 한다.
물론 바다를 건너는 건 험난한 길이다. 팬텀 AI의 윤지현 선임연구원은 "(자율주행차 업체인) 구글 웨이모는 엔지니어만 1000명이 넘고, 지난 10년간 10조원 이상 투자해왔다"며 "이 같은 물량 공세를 넘기 위해선 정말 특별한 한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콘퍼런스 패널리스트로 참석한 김봉훈 한양대 교수는 "당장 전기차·자율주행차를 양산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이를테면 자율주행 자전거, 혹은 그에 맞는 부품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기술을 개발해나간다면 살길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