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에 대한 지금의 막연한 공포와 다를 게 없었다. 18세기 말 석탄은 영국 지식인들에게 악마의 화신이었다. 시커먼 석탄을 태울 때 나오는 검은 연기가 악마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고, 좁은 갱도로 어린이와 부녀자를 마구 투입하고 탄광이 폭발하면서 광부들이 죽어나가는 현장은 지옥이었다. 런던, 로스앤젤레스 등 석탄으로 돌아가던 대도시를 뒤덮은 스모그는 오늘날 미세 먼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이 호흡 곤란으로 죽었다. 그럼에도 왜 석탄을 써야만 했는가?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논픽션 작가 리처드 로즈는 '에너지(Energy: A Human History·사진)'에서 인류가 목재나 동물의 기름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동력원을 얻기 위해 분투해온 장구한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대영제국은 목재의 나라였다. 나무로 전함을 만들고 집을 지었으며, 추위를 피하고 음식을 익혔다. 하지만 도시 근교 삼림지대가 점점 벌거숭이가 되면서 석탄이 대체 에너지원으로 등장했다.

기후 온난화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과 탄소 배출 저감이 시급하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원자력이야말로 그 최선의 대안 기술이다. 일각에서 보이는 원자력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편견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통계로 봐도 원자력 발전의 산업 안전도는 여타 산업에 비해 현저히 높다. 올바른 경영이 실종되면 제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사고를 낳는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허술한 설계 또는 경영 시스템이 야기한 인재(人災)였지 결코 원자력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방사능 노출이 유전자 돌연변이를 낳는다는 가설의 진원지가 됐던 노벨상 수상자 허만 멀러 박사의 연구도 많은 학자의 반증을 거치면서 그 신빙성이 줄어들었다.

복잡계 경제학자 브라이언 아서의 말처럼, 인류 역사상 모든 기술은 등장 초기에 조악(粗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류는 고도의 학습 능력을 발휘해 초기의 위험, 부작용, 미흡한 성능 문제를 결국 해결해 왔다.

다만 시간이 걸린다. 지금 원자력은 세계 전기 생산 시장 점유율이 10%를 약간 넘긴 단계에 있다. 이제 태동한 신재생 에너지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탈리아 물리학자 세사레 마르체티의 장기 에너지 대체 곡선에 따르면, 1850년대 이래 특정 에너지원이 시장점유율 1%에서 10%에 도달하기까지 예외 없이 40~50년이 걸렸고, 50%에 도달하는 데 100년이 걸렸다. 지난 수백년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제대로 안다면 지금 에너지 문제에 대한 시각도 더욱 공정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