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미친 축제라고 알려진 ‘산 페르민’(San Fermín) 페스티벌이 돌아왔다. 매년 7월 6일부터 14일까지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열리는, 가장 격렬하고도 가장 위험한 축제다.

민속음악과 춤 공연, 투우 등 150개 행사가 펼쳐지지만, 산 페르민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엔시에로’(Encierro)다.

매년 7월 6일부터 14일까지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열리는 ‘산 페르민’ 축제. 그 하이라이트는 매일 여섯 마리의 성난 황소와 함께 달리는 ‘엔시에로’다.

엔시에로는 7월 7일 오전 8시, 흰색 옷에 붉은 스카프로 단장한 축제 참가자들이 좁은 골목 길을 가득 채우고 있다가 뿔이 무서운 황소를 극도로 흥분시킨 뒤, 미친 듯 날뛰는 황소에 쫓기며 언덕 위에서 아래쪽으로 달려가는 850미터의 죽음의 질주를 말한다.

축제기간 중 좁은 우리에 갇혀있던 황소들은 그런 식으로 매일 여섯 마리씩 풀려 나와 골목길을 달리게 되며, 성난 황소의 종착점은 투우경기장이다.

[[미니정보] 투우와 스페인 정신]

팜플로나는 바스크 지방과 포도주로 유명한 리오하 지방 인근에 위치한 곳으로 프랑스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지명인데, 축제기간 동안 전세계에서 100만 명 가량의 관광객들이 몰린다.

산 페르민 축제는 외국인에게도 개방적이어서 18세 이상 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무서운 황소 앞에서 비겁하지 않고 용맹함을 입증하고 싶은 마초 근성을 가진 남성들이 주축을 이룬다.

산 페르민 축제의 엔시에로 참가자들은 흰옷에 붉은 스카프를 두르는 게 전통이다. 날카로운 황소 뿔에 찔리는 희생자도 나오는 매우 위험한 축제지만 매년 100만명의 관광객과 참가자를 불러모을 정도로 인기다.

1910년에 첫 사망자를 기록한 이래 이 황소몰이 달리기에서 지금까지 희생된 사람은 모두 16명이나 된다. 올해도 첫날부터 부상자가 속출해 48명이 적십자사의 현장 치료를 받았고, 이 가운데 세 명은 크게 다쳤으며 그 중 두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46살의 미국인 남성은 목에 황소의 뿔이 찔렸다고 하니 얼마나 위험한 축제인지 짐작하게 만든다. 아직 무명이었던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26년에 발표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의 무대도 이 광적인 축제 한 복판이었다.

"7월 6일 일요일 정오에 축제는 폭발했다. 어떻게 달리 축제를 묘사할 도리가 없다. 온종일 시골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시골 사람들은 시내 사람들과 뒤섞여 버려 도저히 구별해 낼 수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이나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계속해서 춤을 추고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계속해서 떠들어 댔다. 축제기간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왼쪽 사진은 1926년에 발간된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초판. 오른쪽 사진은 1925년 산 페르민 축제에 참가한 헤밍웨이, 가운데 흰색바지에 어두운 색 셔츠를 입은 사람이다.

헤밍웨이는 1923년 첫 번째 부인과 산 페르민 축제에 참여했다가 엔시에로와 투우 경기에 푹 빠진 이후 195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스페인을 20번 이상 방문했다.

종군기자로 혹은 작가로 또는 단순한 여행자로 이 뜨거운 나라를 사랑했는데, 특히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에는 무려 여덟 차례나 참가하였다.

스페인의 지방 축제에 불과하던 산 페르민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주역이 헤밍웨이였지만, 거꾸로 헤밍웨이에게 작가로서의 첫 성공을 가져다 준 것도 팜플로나와 산 페르민 축제였다.

1932년에 발표한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이란 작품에서도 투우와 투우사의 세계를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만년에 파리 시절과 스페인 여행을 회고한 ‘파리는 날마다 축제’(A Moveable Feast)라는 글을 보면 그가 얼마나 스페인과 산 페르민을 갈망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가을에 미국에서 첫 단편집을 출판하기로 한 보니 앤 리버라이트 출판사에서 200달러를 선금으로 받았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차이퉁’과 ‘데어 크베어슈니트’, 그리고 파리의 ‘디스 쿼터’와 ‘트랜드애틀랜틱 리뷰’에 내 단편 작품들을 팔았다. 하지만 우리는 7월에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열리는 축제와 그 뒤에 마드리드와 발렌시아에서 열리는 축제에 가기 위해 자금을 저축하려고 꼭 필요한 때에만 돈을 쓰며 허리띠를 졸라댔다."

1925년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에 참가한 헤밍웨이와 친구들. 이 여행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모티브가 되었다. 맨 왼쪽이 헤밍웨이, 가운데 정면으로 보는 여성이 첫 번 째 부인.

팜플로나 시는 1968년에 헤밍웨이 동상을 건립하고, 헤밍웨이의 이름을 붙인 거리와 공원도 만듦으로써 위대한 작가에게 감사와 경의를 동시에 표시하였다.

헤밍웨이는 평생 여러 가지에 빠졌다. 낚시와 사냥에 빠졌으며 권투와 스키 등을 즐긴 만능 스포츠맨이었으며, 술과 여자가 끊이지 않았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의 현장에 있었고, 스페인 내전과 터키 그리스전쟁에도 파견되었다. 타고난 종군기자였다.

그러나 그가 평생 가장 몰두했던 것 두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그 하나는 글쓰기였고, 다른 하나는 ‘코리다 데 토로스‘(corrida de toros)였다. 즉 스페인어로 투우를 말한다. 가장 스페인적인 장면이며, 치열한 현장인 동시에 가장 겸손해야 하는 순간이다.

"스페인에서 소는 특별한 존재다. 특히 투우는 동물과 싸우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스페인에서 소는 동물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다. 투우는 스페인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모양이지만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착하고 대규모 투우장이 각 도시마다 건설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온 뒤였다."

평생 스페인 화가 고야의 일생을 추적했던 일본 작가 훗타 요시에가 ‘고야’에서 한 말이다. 그렇다. 스페인에서 투우는 폭력의 한 형식이고 카타르시스의 한 형식이기도 하다. 위험하며 동물학대라는 투우 반대집회도 종종 열린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 이외에 투우의 의미와 산 페르민 정신을 가장 잘 이해한 외국인이 헤밍웨이라는 평가다.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그의 이름 ‘어니스트’를 스페인 식으로 바꾸어 ‘돈 에르네스토’라 부른다. 존경하는 어니스트란 의미다.

팜플로나 시에 세워진 헤밍웨이 기념비.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에 참석한 파리의 특파원과 문인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가 골자를 이룬다.

주인공 제이크 반스가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를 좋아하는 까닭은 단 하나다. 성난 황소와의 대결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여 거짓 제스처를 쓰지 않고 투우사로서의 품격과 우아함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때론 무자비하고 때론 피비린내 가득한 잔인한 게임에서 용기와 인내와 절제와 위엄 같은 덕목을 지키려 한다.

이 시대의 리더도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이다. 황소에 쫓기는 죽음의 질주처럼 혹은 투우처럼, 또 다른 그 무엇인가에 미친 사람들이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일전이기에 극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그것에 불평을 늘어놓지 않으며 굴복하지 않으며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도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헤밍웨이가 예찬하는 ‘압력에서의 우아함’이다. 이 시대 리더들이 휴가여행 가방 안에 헤밍웨이의 작품을 넣어가는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