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미니정보: 투우와 스페인 정신

조선비즈
  •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
    입력 2019.07.09 05:00

    스페인에서 소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특히 투우는 힘세고 무서운 황소와 싸우는 경기이지만, 경기 이상의 의미를 담든다.

    투우를 가리켜 스페인에서는 ‘코리다 데 토로스‘(corrida de toros)라 부르는데, 여기서 말하는 개념은 투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 자체로 가장 스페인적인 정신이 내포되어 있기에 일종의 국민 스포츠라 말할 수 있다.

    투우 경기에 앞서 투우사들의 입장하는 장면. 스페인에서 유명 투우사의 인기는 유명 연예인 못지 않다./사진=위키피디아
    스페인의 투우 역사는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원래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는 왕의 대관식이나 결혼식 같은 국가적 큰 행사가 있을 때는 궁정을 대표하는 귀족이 왕과 왕비 앞에서 목숨을 걸고 소와 대결하여 자신의 무예와 용기를 보여야 했다. 이것을 투우의 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와 스페인 왕실이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로 바뀌면서 프랑스 출신 왕들은 투우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독히 야만적’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국민정서상 마지못해 인정해왔다. 상류층이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강하게 반대하면 할수록 민중들 사이에서는 투우에 대한 열기가 높아졌다.

    바르셀로나의 투우 안내 포스터./사진=위키피디아
    왕가를 중심으로 투우 반대론이 가장 높았던 18세기에 비로소 투우 전용경기장이 개설되었고, 직업적인 평민 투우사가 등장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1754년과 1785년에 국왕이 투우금지령을 내렸지만, 아무도 그 명령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매주 수요일은 투우 경기가 벌어지는 날로 정해졌다. 그날은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계속 투우를 했다.

    투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귀족들, 특히 귀부인들이 투우와 유명한 투우사들에게 선물과 금품을 경쟁적으로 제공하여, 귀족부인과 투우사는 심상치 않은 관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고풍스런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 화려한 연기를 보이는 로드리고 코스티야레스 같은 이름은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져 온다.

    고야의 투우 연작 가운데 전설적인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의 모습을 그린 작품./사진=위키피디아
    스페인 출신의 많은 화가들이 투우를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대표적인 사람이 가장 스페인적인
    화가라는 고야다. 투우를 소재로 한 그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한번은 ‘투우사 프란시스코’(Francisco de los toros)라고 서명할 정도로 열광하였다.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착하고 대규모 투우장이 각 도시마다 건설된 것은 18세기 말 이후부터였다. 고야 못지 않게 투우에 열광한 예술가는 피카소로 비둘기와 더불어 투우는 그의 평생 주제였다.

    못쓰게 된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를 활용한 피카소의 ‘황소머리’ 조각. 파리 피카소 박물관에 있다./사진=위키피디아
    스페인이 남미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각국에 투우 경기장이 들어섰지만 쿠바에는 투우가 없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한편 현대화가 되고 세대가 바뀌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동물학대 방지 운동이 벌어지면서 스페인 내에서 투우열기는 이전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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