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 등 첨단소재 수출규제에 나서면서 국내 시장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렉서스 등 일본 자동차 업체와 유니클로를 비롯한 유통기업은 국내에서 반일감정이 확산돼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올해 국내 렉서스 판매량, 전년比 33% 증가…日에서 현대차 판매는 ‘0’

영화배우 현빈씨가 지난해 10월 출시된 렉서스의 신형 ES300h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있다.

자동차는 국내에서 일본 기업들이 매년 좋은 실적을 내는 대표적 업종으로 꼽힌다. 지난 2015년 수입차 시장에서 11.9%였던 일본차업체들의 점유율은 올 상반기에 21.5%로 상승했다.

이 때문에 도요타와 혼다, 닛산 등 국내에 진출해 있는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로 성장세가 꺾이지 않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

3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는 올 상반기 국내 시장에서 8372대를 판매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4% 증가한 수치다. 렉서스는 6월에도 949대가 팔려 전년동월대비 판매량이 37.2% 늘었다.

특히 렉서스의 주력 모델인 ES300h는 최근 디젤차 규제로 친환경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올들어 6월까지 국내에서 렉서스 ES300h는 4915대가 팔려 메르세데스-벤츠 E300과 E300 4MATIC에 이어 단일 모델로는 세번째로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혼다 역시 국내에서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올 상반기 혼다의 국내 판매량은 5684대로 전년동기대비 94.4% 급증했다. 6월 판매량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6% 증가한 532대로 빠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일본의 반도체 첨단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도 보복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나 일본에서 현대·기아차의 승용차 판매량은 ‘제로(0)’ 수준이다. 지난 2001년 일본에 진출한 현대차는 2004년 2574대를 판매해 정점을 찍은 후 2005년 2295대, 2006년 1651대, 2007년 1223대로 판매 실적이 매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8년에 고작 500대를 판매하는데 그친 현대차는 결국 일본 진출 8년만인 2009년 승용차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나온 이후 국내에서도 일본차를 사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일본차 불매운동에 나서자는 게시물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대표적인 자동차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도 일본차 구매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고 있다.

◇유니클로·무인양품도 반일감정 확산에 당혹…여행업계도 긴장감 커져

유니클로, 무인양품, 데상트, ABC마트 등 국내 시장에서 지배력을 높여온 일본 패션업체들도 반일감정 확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SPA(제조일괄유통화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는 지난해 국내에서 전년대비 11% 증가한 1조373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344억원으로 전년 대비 33% 늘었다.

스포츠 의류 데상트·르꼬끄스포르티브·먼싱웨어 등을 보유한 데상트코리아도 지난해 매출 7269억원을 기록하며 2001년 국내 진출 이후 16년 연속으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ABC마트는 국내에서 256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2003년 한국에 진출한 무인양품도 고속성장 중이다. 지난해 매출은 1378억원으로 전년 대비 25.8%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30% 늘어난 76억8000만원을 기록했다. 2015년 15개였던 무인양품의 점포 수는 지난해 말 35개로 늘었고 올해도 국내에서 대규모 플래그십 스토어가 20개 이상 문을 열 예정이다.

여행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일본관광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 관광객은 약 754만명으로 2000년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국내 경기침체 속에서도 매년 증가하는 일본 관광 수요로 버텨온 여행업계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이후 일본 여행을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이 달갑지 않은 분위기다.

◇실제 日 제품 판매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전망도

그러나 자동차와 유통업계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심화돼도 실제 국내에서 일본 제품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일본 해상자위대의 초계기 관련 갈등과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등으로 양국간 긴장감이 높아졌을 때도 도요타 등 일본차는 꾸준히 팔렸다"며 "특히 하이브리드 차종에서는 일본 업체들의 경쟁력이 높아 국내 시장에서 성장세가 꺾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업계도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국내에서 불매운동으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패션업체 관계자는 "국내에서 반일 감정이 확산되지 않을까 일단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젊은 세대들은 정치적인 이슈보다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에 더 우위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제품 판매가 크게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