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진흥공사, 보여주기식 성과에만 집착 ‘문제’

현대상선이 내년 2분기부터 인도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확보하더라도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산업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초대형 선박 20척을 건조하기 위해 조달하는 금융비용이 크기 때문에 경쟁 선사보다 운임을 비싸게 받아야만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현대상선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확보하면 고정비 원가가 낮아져 이익을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현대상선에 관리단을 파견해 재무구조를 살펴본 대주주 산은마저 초대형 컨테이너선 도입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것이다. 정부의 해운 구조조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4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2만3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선박 12척에 대한 투자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7개 금융기관과 1조9712억원 규모의 대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20일 공시했다. 나머지 1만5000TEU급 선박 8척 건조에 필요한 선박금융 조달 방안은 검토 단계다.

현대상선은 2만3000TEU 선박 12척의 건조가격 중 10%를 부담하고, 나머지 90%를 선박금융을 통해 조달한다. 메리츠종금증권‧미래에셋대우가 선순위 투자자, 산은과 수은이 중순위 투자자로 참여한다. 메리츠종금증권과 미래에셋대우는 해양진흥공사 보증을 통해 선순위 투자 비율만큼 다시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하기로 했다.

산은과 해양진흥공사는 현대상선이 컨테이너 선박과 박스 발주를 위해 발행하는 2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도 각각 1000억원씩 매입하기로 했다. 현대상선은 선박 발주에 필요한 차입금이 발생하면서 재무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상선은 회계기준이 바뀌면서 지난 1분기 부채비율이 625%까지 불어난 상태다.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 경쟁 선사보다 운임 더 받아야 이익 낼 수 있어…국내 화주 외면할 듯

문제는 현대상선이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확보하더라도 해운 재건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한 번에 많은 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초대형 선박을 확보하면 고정비 원가가 낮아진다고 판단했다. 값싼 고유황유를 쓸 수 있도록 스크러버(오염물질 저감장치)를 설치해 유류비를 절감하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9일 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공동 주최한 ‘해운산업 재건 성과와 미래발전방안 세미나’에서 장세호 산업은행 산업혁신금융단장은 현대상선의 자본비로는 수익을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산업혁신금융단은 지난해 신설된 조직으로 해운‧조선 등 주요 산업을 전담해 기업 여신을 통합 관리한다.

해운업 원가는 크게 고정비와 변동비로 나뉜다. 고정비로 분류되는 자본비는 선박차입금에 대한 원금과 이자, 선박 감가상각비 등을 의미한다. 자본비는 통상적으로 해운업 원가의 10%를 차지하는데, 자본비가 클수록 원가 부담이 증가한다. 동일 운임에 같은 화물량을 실어 나르더라도 원가 부담이 크면 이익을 내기 어렵다.

장세호 단장은 "현대상선 2만3000TEU급 선박 12척과 1만5000TEU급 선박 8척을 조달하기 위한 금융비용 이자율이 선순위, 중순위, 후순위 모두 합칠 경우 달러 기준으로 7.5%가 넘는다"며 "컨테이너선보다 담보가치가 낮은 박스 등 장비는 외국계 금융기관에 지불하는 자문수수료까지 포함해 최소 8.5% 이상의 조달금리를 부담하게 된다"고 했다.

장 단장은 이어 "현대상선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고비용 선박까지 고려하면 영업이익률을 15% 이상 기록하지 않으면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라며 "미주 노선 운임을 1TEU당 1000달러로 보면 1TEU당 50~100달러를 더 받아야 현대상선이 지속 가능한데, 그러면 국내 화주가 화물을 싣지 않아 선‧화주 상생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장 단장은 현대상선의 고비용 구조를 해결하려면 클린 컴퍼니로 재탄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상선을 신용등급 ‘A+’ 이상 클린 컴퍼니로 만들면 금융비용을 5% 이하로 낮출 수 있어 머스크라인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 해운 정책 담당 해양진흥공사 역할에 의구심

해운업계에서는 산은이 현대상선의 선박금융 비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해양진흥공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해양진흥공사는 지난해 7월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 시행을 위해 설립됐다. 원양 컨테이너선대 100만TEU 달성을 목표로 하는 해운 재건 계획에 따라 선박 발주뿐 아니라 현대상선의 부산항 터미널 지분 확보(500억원), 재무구조 개선(5500억원) 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해양진흥공사가 현대상선의 고질적 문제인 고비용 문제 해결은 뒷전이고, 컨테이너 박스 발주와 운영사 설립 등 보여주기식 성과에만 연연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해양진흥공사는 현대상선이 2만3000TEU급 선박 도입 과정에서 부담하는 이자 수준이 산은에서 제시한 7.5%보다 낮은 4.7%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박광열 해양진흥공사 본부장은 "산은측과 다시 한 번 짚어봐야겠지만, 2만3000TEU 선박에 대한 금융비용은 각종 수수료를 제외하고 4.7% 정도"라며 "당초 선박금융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금융권과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자율이 올라간 부분이 있다"고 했다. 현대상선은 선박금융 조달금리에 대해 확인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양진흥공사 지원을 받지 않는 폴라리스쉬핑 등 다른 선사가 조달하는 선박금융 이자가 7~8% 수준"이라며 "현대상선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는 해양진흥공사가 7.5%에 달하는 높은 이자를 현대상선에 부담하게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