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 노조가 지난 12일 전면파업을 철회하고 '2018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안'에 잠정 합의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악으로 치닫던 르노삼성 노사 갈등을 봉합한 주인공은 회사 측도 강성 노조도 아니었다. 회사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고 싶어하는 평범한 노동자들이었다.

르노삼성 노사는 지난달 16일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같은 달 21일 치러진 조합원 찬반투표의 벽을 넘지 못했다. 노조 집행부는 지난 5일 무기한 전면 파업을 선언했다. 전면 파업 여파로 생산량은 뚝 떨어졌다.

이때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됐다. 부산공장 노조원 60% 이상이 노조 집행부의 전면 파업을 거부하고 정상 출근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일하는 40대 정모씨는 "노조 집행부의 파업 지침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지켜낸 회사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노조 집행부는 결국 사상 첫 전면파업이라는 카드를 철회해야만 했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이어진 부분파업과 전면파업으로 3000억원 이상의 손해를 입었다. 이 기간 협력업체가 입은 손실은 1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내수와 수출 판매는 각각 14.4%, 45.6% 급감했다. 명분 없는 파업으로 프랑스 르노그룹이 한국을 떠나면 전 직원이 공멸할 것이라는 우려가 결국 노조 집행부의 '백기투항'으로 이어졌다.

한국 완성차 업계에서 '노조 리스크'의 불씨는 여전하다. 르노삼성은 가까스로 임단협을 마무리 지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가 곳곳에 놓여있다.

당장 한국GM 노조는 19일과 20일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조정중지 결정이 나오고 조합원의 50% 이상이 쟁의행위에 찬성하면 노조는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는 쟁의권을 갖게 된다. 한국GM 노사는 지난달 30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임금협상에 돌입하려 했지만, 교섭장소에 대한 견해 차이로 만남은 6차례 무산됐다. 노사 양측 모두 완강한 입장이라 찬반투표에서 쟁의행위가 가결되면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르노삼성 노조의 파업이 끝나자마자 한국GM 노조가 파업 바통을 이어받는 형국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도 올해 임단협에서 정년 연장, 고용 안정, 통상임금, 불법파견 불법촉탁직 해결 등 '4대 핵심요구' 등을 두고 치열한 기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거의 매년 파업을 벌여왔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달 30일 임단협 상견례를 시작으로 지난 12일까지 네 차례의 교섭을 진행했지만 입장차를 전혀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업체는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해외 판매는 부진하고 내수 시장은 정체를 맞고 있다. 주요 자동차 생산 경쟁국에도 뒤처지며 국내 자동차 산업의 엔진이 식고 있다. 똘똘뭉쳐도 위기를 극복하기 힘든데 회사야 어떻게 되든 우선 당장 이익을 챙기고 보자는 태도는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1998년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을 마지막으로 20년 넘게 국내에 신규 완성차 공장이 생겨나지 않은 이유를 곰곰이 고민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