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성 화장품에 아토피 등 질병명을 넣을 수 있도록 한 화장품법 시행규칙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소비자에게 '질병 치료 효과'가 있는 제품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한피부과학회, 대한피부과의사회, 소비자단체협의회 등은 5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질병이름이 표기된 화장품이 해당 질병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소비자들이 오인할 수 있는 '기능성 화장품법' 시행규칙을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2017년 5월 30일 기능성 화장품 종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화장품법 시행규칙을 시행했다. 시행규칙에는 기능성 화장품에 미백, 주름개선, 자외선 차단 등에 이어 여드름성 피부 완화, 탈모 완화, 아토피성 피부 보습, 탈색, 염모, 튼살 개선 등 7종을 추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전 시행규칙에서는 미백, 주름 개선, 자외선 차단 등 3종만 인정됐지만 그 범위가 10종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들 단체는 "식약처는 2017년 초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시행규칙 개정안을 강행했다"며 "국민 건강을 해칠 수 있는 화장품법 시행규칙이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성준 대한피부과학회 회장은 "화장품법과 대법원 판례에 의해 화장품에는 의약품으로 오인할 우려가 있는 표시를 할 수 없고 질병에 관한 표현이 금지된다"면서 "그럼에도 식약처는 아토피·여드름·탈모 등 질병 이름과 그에 대한 효과를 표시한 화장품을 허용하는 화장품법 시행규칙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서 회장은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질환명이 들어간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같은 화장품 표기는 환자들에게 의학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오해돼 치료시기를 놓쳐 질병 악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능성 화장품 시행규칙이 개정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까지 아토피 기능성 화장품 허가 사례는 없다. 이들 단체는 줄곧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토피 질환은 진단과 치료법도 까다롭고, 환자 개별 특성에 맞는 치료가 필요한 만큼 화장품에 질환명을 표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석민 대한피부과의사회 회장은 "국내 화장품 해외 수출 등 산업 육성이라는 미명 하에 아토피 등 질환명이 포함된 내용을 용기에 표기되도록 하는 것은 환자들에게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김 회장은 "아토피는 유전적·환경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증상이 발현되는 질환이지, 단순히 건조증세만 있는 것이 아니다"며 "아토피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오인되면 국민들이 마트나 인터넷에서 화장품을 구매해 사용할텐데, 이는 결국 국민 건강을 해쳐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우려 속에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은 지난달 14일 화장품 표시와 광고 기준을 정비하는 내용 등을 담은 화장품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질병 명칭을 포함하거나 질병의 치료, 경감, 예방 등 기능이 있는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는 금지하고 있다.
반면 화장품을 개발·판매하는 기업 입장은 다르다. 화장품 기업은 기능성 화장품이 일반 화장품보다 아토피 등 환자 보습을 통해 질병 악화를 막는 등 효과가 있지만 의약품에 밀려 광고도 못 하고, 효능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제약업체도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면서 민감성 피부 환자를 위한 제품 개발·판매에 주력한다.
이들 단체는 한 목소리로 "아토피 등 질병 이름이 들어간 기능성 화장품은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한 것인데 식약처가 일조하고 있다"며 "특정 질환명을 표기하지 않고 대체할 수 있는 보습 기능, 영양공급 등 다른 문구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법안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