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의 회사 법인 분할을 결정하기 위한 주주총회가 울산에서 열렸던 지난달 31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 현안 간담회를 소집했다. 녹실 간담회라고 이름 붙여진 이날 회의에는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등이 참석했다.

녹실 간담회가 소집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경제계에서는 현대중공업 사태에 대한 입장이 나올 것인지를 주목했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합병 하기 위한 현대중공업 법인 분할을 결정하려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노사가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반대하는 노동조합은 주주총회 장소를 불법 점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녹실 간담회 안건은 현대중공업 사태가 아니었다. 회의 후 배포된 보도자료에는 "미·중 통상갈등이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비롯해 지난해 12월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수출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적혀있었다. "수출의 경우 반도체 단가 하락, 세계경제 둔화 등의 영향으로 5월에도 감소할 것으로 보이고, 4월 경상수지의 경우 소폭 적자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기재부 보도자료 내용을 전해들은 한 대기업 임원은 "정부의 산업구조조정 정책에 따르기 위해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것인데, 정부가 나몰라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정부 주도로 논의가 시작된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때문에 현대중공업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점에서 회사측 입장을 지지하고 노조의 불법행위을 엄단하겠다는 경제부처 장관들의 목소리가 나왔어야 했다는 지적이 경제계를 중심으로 나온다. 수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고 하더라도, 현대중공업 사태에 대한 경제부처의 입장을 확인시켜 주는 메시지가 나왔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부담스러웠는지 홍남기 부총리는 그날 오후 인천공항 입국장 면세점 개점 행사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현대중공업이 고용관계를 승계하고 단체협약도 이어받겠다고 약속했으므로 그런 측면을 노조가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노동조합 앞에만 서면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 같다"는 인식을 뒤집지는 못할 것 같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최근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마이너스(-)’로 도배되면서 홍 부총리 등 경제부처 장관들은 ‘경제활력을 제고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현장에서는 정부의 ‘활력 제고’ 약속에 괴리감을 느끼고 있다. 노조 앞에만 서면 왜소해지는 경제부처의 모습 때문이다.

노조의 파업이 예고되면, 정부는 무슨 요구든지 다 들어줄 것 같은 태도로 대응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른 임금보전 등을 요구한 버스 노조 파업을 국민 돈(세금)으로 무마시킨 게 대표적이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여당 원내대표가 경제부처를 다그쳐서 정부 재정으로 버스회사를 지원하는 준공영제를 확대하고, 시민들의 버스요금 부담을 늘리는 결론을 만들었다.

경제활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파괴와 혁신이 불가피하다. 경쟁력을 상실한 상처를 과감히 도려내서 새 살이 돋아나게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 충돌에 따른 파열음을 최소화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시절 이후 최대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 과정이 ‘노조 무법천지’로 얼룩진 것 자체가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자기 할일 하지 않는 정부의 다짐이 공허한 외침처럼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