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초 지프 컴패스 차량을 산 김모(38)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친구 결혼식이 끝나고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자신의 차량에 탑승해 시동을 켰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차량 구입 후 가끔 시동을 켜면 꺼지다가 다시 켜지긴 했지만 이날은 전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차량을 서비스센터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정비 후 차량을 받았지만 시동을 걸 때마다 이상한 잡음이 들려 운전할 때마다 불안하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차량을 산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차량의 주행거리는 1000㎞ 미만이다. 김씨처럼 시동이 걸리지 않는 현상을 겪는 지프 컴패스와 레니게이드, 체로키 차량 소유주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프 수입·판매사인 피아트크라이슬러(FCA)코리아 측은 엔진쪽 결함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며 문제점이 발견되면 개선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형 레몬법'(키워드 참고)이 시행되고 있다는 점을 떠올린 김씨는 차량 교환에 대한 희망을 품고 관련 내용을 찾아봤다. 하지만 FCA코리아는 아직 레몬법을 적용하지 않고 있어 레몬법이 무용지물이었다.

지난 2015년 9월 11일 광주 서구 벤츠 판매점 앞에서 A씨가 차량 결함을 항의하다 자신의 벤츠 차량을 골프채로 부수고 있다.

◇레몬법 적용한 수입차 절반도 못 미쳐

올해 1월 1일부터 새로 산 차량이 1년 안에 또는 2만㎞ 미만을 주행했을 때 반복해 고장이 나면 자동차 제작업체가 교환이나 환불해주는 개정된 자동차관리법 일명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되고 있다. 문제는 수입차 절반 이상이 ‘한국형 레몬법’에 동참하지 않고 있어 법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많다.

30일 수입차업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형 레몬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수입차 업체는 24곳 중 11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BMW와 미니, 재규어, 랜드로버, 닛산, 인피니티, 토요타, 렉서스, 볼보 등이 레몬법을 적용하고 있다. 반면 지프를 비롯해 벤츠, 푸조, 시트로엥, 포르셰 등은 레몬법 도입을 검토만 하고 있다.

수입차 업체가 레몬법 적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강제 사항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은 차량의 교환·환불은 결함이 있으면 판매계약서에 교환 및 환불 조항을 넣어야만 가능하도록 했다. 또 계약서에 이를 포함하지 않아 레몬법이 적용되지 않으면 교환·환불 조치를 하지 않아도 완성차 업체를 처벌할 수 없다.

애초 레몬법에는 완성차 업체가 교환·환불 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도록 하는 등의 처벌 조항이 담겼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런 내용이 빠진 채 2017년 9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자동차업계의 반발에 국회가 한발 물러선 것이다.

미국은 레몬법을 도입하면서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자동차가 동일한 문제로 두 번 이상 수리해야 하는 결함이 발생하면 교환·환불하게 강제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이미 비슷한 법이 시행 중이다.

지프 올 뉴 컴패스.

◇강제성 없으면 ‘있으나 마나’

한국형 레몬법이 제대로 정착되려면 강제성을 띠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새 제도가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신차 구매 계약 시 교환·환불 보장 등 국토교통부령으로 규정한 사항을 계약서에 서면으로 표기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제조사별 신차 계약 절차를 강제할 수 없다.

보상의 기준이 되는 결함 규정이 모호하고 제조사가 결함에 선제적으로 책임을 지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가 차량의 결함을 입증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2만여개의 부품과 전자장치로 이뤄진 자동차의 결함을 소비자가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레몬법이 실효성 있는 제도로 거듭나려면 미국에서 도요타가 급발진 관련 조사에 늑장 대응했다는 이유로 1조3000억원의 벌금을 물었던 사례처럼 징벌적 벌과금 제도가 필요하다"며 "강력한 처벌 수단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제작사의 불복에 의한 소송만 남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레몬법(Lemon Law)
레몬법은 1975년 미국에서 제정된 자동차와 전자 제품 관련 소비자 보호법의 별칭으로 쓰이고 있다. 레몬은 겉과 속이 달라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하자 있는 상품'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올해부터 시행된 '한국형 레몬법'인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에 따르면 신차 구매 후 1년 이내(주행 거리 2만㎞ 이내)에 중대한 하자로 2회(일반 하자 3회) 이상 수리하고도 증상이 재발한 경우 제조사에 신차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자동차 교환·환불 제도는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